은행, 인생, 리셋

By | 2015-12-03

며칠전 회사 물건 쇼핑을 하면서 Business Visa 카드로 결제하려고 했더니 Declined 이라고 표시되는 바람에 개인 카드로 계산해야 했다. 오늘 또 그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카드 발급은행인 TD Bank 에 전화를 해서 확인 요청을 했더니 대답이 “그 카드는 못 쓰므로 가까운 지점에 가서 새 카드 발급 신청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무슨 문제냐, 비정상적 사용이 있었냐, 카드 정보가 유출됐냐, 뭐가 문제냐”라고 두번을 물었는데도 담당자는 “그냥 그 카드는 사용할 수 없게됐다. 다른 이유는 없다. 새로 발급 받아라.”라고만 답변한다. What a Canadian way!!… 이런 식의 일이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란 말이지. 이 나라에선 기업이건 정부 기관이건 뭔가 자기네들의 잘못을 문제가 생기면 꼭 이런 식으로 무마하려고 한다. 꼭 뒷구멍으로 조용히 해결하고 입을 쓱 씻고 만다…

캐나다에 잠시 여행 오는 사람들, 혹은 이주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이곳의 속성을 잘 모른다. 그저 한국을 벗어나서 좋아, 선진국에 오니 좋아, 모두들 미소 지어주니 좋아라고 할 뿐이다. 사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어느나라나 나름대로의 냄새가 있다. 어느 집에서나 그 집 특유의 냄새가 풍긴다. 그저 나처럼 캐나다에서 힘겹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 쳐야하는 경우에나 그것이 진하게 다가온다. 나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그리고 난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아마 영영 안될 것 같다.

윈도우가 깔린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리셋을 시키면 부팅하면서 화면에 뜨는 메시지가 있다. “예전에 성공했던 마지막 설정 Last known Good Configuration 으로 컴퓨터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내 인생에도 그런게 필요한 상황이다. 만약 그게 된다면 캐나다에서의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언뜻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다 RAM 에 저장되어 있으니 리셋과 함께 다 지워져버릴 것이고 그러면 또 지금같은 상황에 봉착하는 걸로 귀결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냥 삶의 경험이 RAM 이 아니라 하드디스크에 고이 저장되게 하는 방법을 찾는게 나을 것 같다. 그것도 하드디스크마저 삭제되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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