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물시 (非禮勿視)

By | 2017-04-22

어느 인터넷 카페에 내가 달아놓은 댓글에 “회자정리 會者定離” 라고 어릴적 중학교 한자 시간에 배웠음직한 사자성어를 적고 보니 제가 애용하는 또 다른 사자성어가 떠올랐습니다. “비례물시 非禮勿視” 원래는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시 시리즈가 세트 메뉴라지만 저는 항상 비례물시 한가지만 머리에 떠오릅니다. 결국은 세가지 다 거의 같은 뜻일겁니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말라, 듣지말라, 말하지말라는 것인데 건방지게 해석하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라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말라”, 그리고 비슷하게 여러 경우에 적용하여 한편으로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삼가하라” 혹은 돈거래를 하지 마라는 등등의 뜻으로 나름대로의 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꼭 내 자신이 올바르고 정직한 사람이라 그렇다는 주장을 하는건 아니고요, 도리에 벗어나는 일을 하면 반드시 나중에 후환이 따른다는 생각이라서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볼 때에도 잠시의 유혹 때문에 내 본연의 자세를 조금 흩트린 경우에는 그 결과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가지게 된 생활의 자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가 꼭 ‘비례물시’의 원칙을 따라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더군요. 많은 예외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둘러 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잘 먹고 살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직접 자기 손으로 하지 않아도 잘 지내던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도 보이구요. 그런걸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마음이 착찹해 집니다. 30 년전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몇번 경험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경험은 졸업후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 수원의 S전자 연구실에서였습니다. 한참 개발하던 수출용 제품에 문제가 발견되자 함께 개발을 진행하던 옆팀의 담당자가 내 뱉었던 말이었습니다. “난 이렇게 하자고 한적 없어. 당신네 팀에서 다 한거잖아.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말한 증거 있어? 업무협조전 쓴 것 있어?” 라며 분명한 자신의 책임을 발뺌하는 모습을 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아, 이사람은 가까이하면 안되겠다’ 싶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한국을 떠나던 2006년 가을까지 그런 경험은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었지요. 어려운 점은, 산에 들어가서 고립된 삶을 살며 도를 닦고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을 가려서 사귀거나 골라가며 일을 할 수 있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제 자신의 ‘바른 생활’ 컴플렉스가 피크로 치달을 즈음 우리 가족은 급작스런 결정을 내립니다.

2002년 경기도 양평에 땅을 보러 다니다가 그린벨트 바로 옆에 있는 산 중턱 땅을 구입하고 대지로 만든 뒤에 집을 짓고 가을에 이사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건축을 진행하다가 업자가 돈은 다 받고 집 완성을 안한 채 떠나버리게 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직접 마무리 공사를 해 가면서 2006년 여름에 집을 팔고 태국으로 떠나기까지 4년간 그렇게 반쯤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 개도 많을 때는 5마리까지 키웠고 텃밭을 만들어 직접 채소도 키워서 먹어보고 폐차 직전의 트럭도 구입해서 건축자재를 싣고 나르면서 집도 거의 절반은 혼자 짓다시피 했었지요.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생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진 않았지만 세상사로부터 멀리할 수 있었기에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좀 놀다보니 돈이 필요해서 강남에 IT 벤처 회사도 만들어서 운영도 해보다가 우여곡절 끝에 문 닫는 일도 있었지만 최대한 ‘비례물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태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방콕이 아닌 태국 북쪽 끝자락에 있는 치앙마이라는 곳이었는데 예상외로 한인들이 적지 않게 살고 있더군요. 국제학교가 몇개 있기에 자녀 유학으로 온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식당이니 여행사 운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전혀 경제활동을 안 하고 살았지만 한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잦았는데 이상한 사람이 몇 보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단박에 ‘비례’에 해당되는 사람임을 알아채고 거리를 멀리했는데 나중에 사기를 치고 한국으로 야반도주했다더군요. 겉으로는 의리, 정의, 한국인의 자부심 등의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자신을 포장했지만 실상은 그와는 전혀 반대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2년여의 태국 생활을 뒤로 하고 2009년 1월에 캐나다 런던으로 온가족이 이주합니다. 첫 보금자리의 아파트 빌딩 매니저가 퇴역군인이었는데 워낙 성격이 좋은 양반이라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에 방이 더 많은 타운하우스로 이사하고, 그 뒤에 주택을 구입해서 다시 이사를 할 때까지는 별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조금씩 다시 ‘비례’와의 조우를 하게 됩니다. 아내는 조그만 회계업체에서 일하고 저는 핸디맨과 용달, 그리고 렌탈주택 운영 등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얼마후엔 비즈니스를 인수해서 오늘까지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면있는 한인들이 가끔 묻습니다. 현금이 많이 들어오냐, 현금 매출이 많아야 돈 버는 장사다, 세금 신고를 다하면 바보다.. 제 비즈니스의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저 자체가 그런걸 머리속에 넣는 것 자체를 원치 않습니다. 동전 한닢까지 거의 100% 신고입니다. 직원들은 많을 때는 20명이 훌쩍 넘기도 했었는데 워낙 이직률이 많아서 자주 신입을 뽑아야 하는데 처음 와서 트레이닝을 받는 시간까지 모두 법정 최저임금을 줍니다. 아직 성년이 안 된 학생이 일하게 되는 경우에도 학생용 최저임금이 아닌 성인용 정식 임금을 줍니다. 직원에 관한 모든 사항은 물론 운영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캐나다로 이주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상식에 맞게 생활해도 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서였죠. 처음엔 5개의 매장이었는데 좀 멀리 떨어진 한 곳을 닫은 뒤에도 고객들이 멤버쉽이나 사용권에 대해 리펀드를 원하면 모두 해 줬습니다. 아는 캐네디언들도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강변했고 비즈니스 변호사도 전혀 그럴 필요 없었다고 하지만, 제가 맘이 편하지 않아서였습니다. ‘비례물시’의 원칙을 지켜서 옳은 쪽으로 가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노동부 (Ministry of Labour)에서 몇 번 감사를 나온 적이 있는데 사소한 실수 외에는 거의 완벽하게 ‘문제없음’ 판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작 고심을 해야할 만큼의 상황이 된 것은 아내가 리얼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부터였습니다. 아내는 계속 고심했습니다. 과연 어떤 집을 구매하려는 고객에게 금액을 이만큼 많이 쓰라고 적극 권고를 하는게 맞는지, 아니면 이 정도의 집을 그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니 그 금액을 제시하지 말라고 하는게 맞는지… 거의 1년동안 50 번 정도 쇼잉 요청을 하면서도 전혀 구입할 기색이 없는 고객에게 이제 ‘그동안 즐거웠습니다’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기약할 수는 없어도 계속 쇼잉 약속을 잡고 함께 그 집들 방문을 해야 하는지… 집을 사겠다는 고객을 6개월 동안 온갖 집을 다 보여줬는데 끝내 안 사기로 했다고 해서 그런줄 알았더니 얼마 뒤에 다른 리얼터를 통해 덜컥 집을 사버린 경우엔 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집을 사겠다고 부부 중의 한 사람은 고집하는데 배우자가 확신하지않을 때는 어찌 할까… 집을 사겠다고 해서 쇼잉을 했는데 알고 보니 벌써 다른 리얼터를 이용해서 많은 집들을 봤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과정이 끝나고 디파짓을 해야하는 상황인데 돈 없다고 배째라고 나오는 경우… 등등의 아주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더군요.

아내도 ‘비례물시’가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그때그때의 경우마다 저와 충분히 얘기를 하고나서 갈길을 정했습니다. 가령 바이어가 꼭 원하는 집이라면 가격을 높여서라도 살 수 있게 만들고 집을 놓쳤다는 후회를 하지 않게 해준다… 집과 가격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시켜서 충분한 고려를 하게 만든다… 나를 버리고 다른 리얼터에게 간 고객은 내가 부족해서 만족을 못했기 때문이니 다음엔 더 노력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이미 다른 리얼터를 통한 뒤에 나에게 온 경우는 그 리얼터에게 돌려보낸다… 1년간 몇십번의 쇼잉을 하면서도 구입을 하지 않았어도 그 고객이 원한다면 그 일을 계속 한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거래를 원하는 고객은 잘 설득시켜서 정상적인 방법을 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쉽지만 중개를 거절한다 (리얼터들 끼리는 이런 경우에 I’ve just fired my customer 라고 반농담조로 표현한다네요)..

올해 초에 그런 결심을 하고 나서 아내의 부동산 거래 성사 실적이 급격히 올라가더군요.1월달에는 아내가 소속된 회사 내에서 공동 2위의 실적을, 2월엔 부진했다가, 3월에는 드디서 회사 내에서 1위의 판매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4월이 끝나지 않았지만 거의 1위 아니면 2위에 올라갈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구요.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작년 한해 번 만큼을 올해 3, 4월 두달간 다 벌었다”라고… 저는 이런 결과가 나름대로의 올바른 길로 가자는 원칙을 정해놓고 다른 쪽으로 한눈 팔지 않고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얻어졌다고 믿습니다. 물론 리얼터의 실적도 시간에 따라 들쭉날쭉한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착하게 살자’라는 원칙에만 고지식하게 매달릴 수도 없는 직종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최대한 Do the right thing 의 원칙을 따라서 성실하게 고객을 대변하고 고객을 비롯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칫 사소한 이익에 주의를 빼았겨서 ‘비례물시’를 실천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만 없애며 살아간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자긍심과 함께 캐나다 이민자로서의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수로 비례물시의 생활 신조를 잠깐 벗어났다가 다소 피곤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그것을 반성의 기회로 삼아 다시 본궤도에 오른 아내의 모습은 저에게도 적지않은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비례는 물시하라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I was born allergic to bullshit 이니 그런것과는 거리를 멀리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