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차와 다시 함께 하다

By | 2017-10-30

얼마전에 28년 운전 경력만에 첫 충돌 사고가 있었고 그 얘기는 앞의 글에서 적었는데 당시에는 가벼운 흠집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아서 수리를 할까 말까하는 단계까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로 어떤 문제가 있느니 괜찮느니 결론을 내리는 것 보다는 며칠 차를 몰고 다니면서 단순한 뒷범퍼쪽 손상뿐인지 아니면 기능상의 문제가 있는지도 보고 몸에도 뭔가 이상이 있는지 살펴본 다음에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다른 분들은 차에 타고 있다가 뒤에서 받치면 뒷목을 부여잡거나 허리 통증을 얘기하는 일이 많은듯 한데 저는 그런 문제는 없고 그냥 하루 정도 배가 아프고 불편하다 싶더군요.  이걸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주장하기엔 좀 얼토당토 안하다 싶은데 또 바로 좋아졌습니다. 전날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었나 봅니다. 몸은 멀쩡했고 차도 평소처럼 잘 다니는데 사고 난지 며칠 뒤에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아내가 얘기합니다. 가해 차량 운전자가 자신의 보험사에 피해보상 클레임을 했고 그것이 제 보험사에게 연결이 되어서 저에게 연락한 것이며 제가 클레임을 할지 안할지 여부를 결정해서 저 본인이 직접 전화로 알려줘야 이 케이스가 완료된다더군요. 사고난지 일주일 뒤에 전화해서 일단 수리 업체에 가서 확인을 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지정업체가 있는지 물었더니 몇개 업체를 얘기해 주는데 그중에 CarStar 라는 업체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어서 거기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CarStar 는 평소에 길을 다니면서 항상 보고 다니는 업체입니다. 제법 규모가 있어보이는 곳이라 괜찮다 싶었지요. 보험사에서 미리  시간 예약을 해준대로 가서 차를 보여줬습니다. 범퍼는 새걸로 교체해야 된답니다. 이 정도 사고라면 범퍼는 쑥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이렇게 보일 뿐이고 한번 그렇게 사고가 나면 그 다음부터는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뒤에서 받혔을 때 범퍼가 들어가면서 뒷문짝의 일부를 살짝 찌그러트린 게 있다고 보여주는데, 저도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고에서는 100% 뒷차의 과실이라 제가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없고 또 보험 프리미엄이 인상되지도 않으니까 그게 당연한 것이긴 한데 이 차를 중고 판매할 때에는 얼마의 비용으로 어느 부분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남으면서 다소 불리한 부분이 생길까봐 조심스러웠던 것이죠. 하지만 이것 저것 따져보니 보험사에 클레임해서 수리하는게 맞다 싶었습니다.

수리는 그 다음주 월요일 8시 반에 차를 그 수리업체에 가져다 놓는 것으로 시작되고 업체는 미리 렌트카 업체에게 연락해서 차 수리를 하는 동안 제가 타고 다닐 차량을 예약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비용은 보험사에서 지불합니다. 월요일이 되어 차를 대충 비운 다음에 업체로 가서 차를 놓고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던 렌트카 업체 직원과 만나 차를 받았는데… 제 차가 Honda Pilot 이다 보니 그나마 비슷하게 맞춰준다고 SUV 로 가져온 것이 가격이 좀 되는 캐딜락 XT5 더군요. 보험사 부담 차량은 일부러 최대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높은 가격의 차를 가져오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여기엔 캐딜락에서 럭쥬리 SUV 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온갖 자동기능이 넘쳐나더군요. 제 차도 나름 2013년형 Pilot 중에서 최고 사양인 Touring 트림이었는데 비교가 안 될 만큼.. 그중 처음 사용한 것이 주차 브레이크였습니다. 발로 밟거나 손으로 땡기는 게아니라 계기판 옆의 버튼을 가볍게 터치하면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주차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그다음엔 운전대 높이와 깊이를 조절하는 기능도 버튼을 누르면 모터가 부드럽게 조절해주고 그밖에도 차 지붕에 넓게 자리한 파노라마 선루프도 신기했고, 비상등도 터치스크린에 있고, 캐나다에선 드문 편인 접히는 백미러, 야간에 주행하다 오르막길을 만나면 저절로 켜지는 상향등, 충돌방지 시스템, 차선 이탈 경보 기능, 자동 주행 모드 등등…

이틀 정도는 신기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이것저것 사용해 보면서 재미를 느끼긴 했는데, 정작 업무를 보기 위해 운전하고 돌아다니면서는 그게 그저 단순 장난감처럼 느껴지더군요. 정말 어쩌다 일년에 한두번 사용할 정도의 악세서리 기능들이 많은데 제가 추구하고자하는 심플라이프에서 거리가 멉니다. 물론 일부 안전 기능은 편리성과 안전성을 높여주긴 하지만 아직은 나의 감각과 반사 신경이 자신있어서 그다지 사용할 마음은 안 생깁니다. 조금 나이가 더 들거나 혹은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할 때에는 그래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점은 주행능력이더군요. 제차 엔진은 3500 cc,  그리고 이 차는 3600 cc 짜리니까 엔진 크기는 비슷하지만 이 캐딜락은 뭐가 이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스펙을 찾아보니 역시나 무게 차이가 큽니다. Pilot 은 약 2톤 정도, XT5 는 2.7톤을 약간 넘습니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운전성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어쩌면 저와 이 차가 몇년을 함께 하면서 서로 익숙해져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약속한 금요일 아침에 차 수리가 다 끝났다고 업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총알처럼 신차를 몰고 가서 내차와 상봉을 했습니다. 렌트카 차키를 업체 사무실에 반납하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내차에 올라 앉으니 맘이 편합니다. 오래된 친구처럼, 혹은 바람난 남편이 한동안 집을 떠났다가 정신을 차리고 조강지처에게 돌아와서 안기는 것처럼… 내 맘대로 차를 다룰 수 있으니 편하더군요. 원하는대로 가속하고 방향전환하고 멈추고… 역시 좋군요. 게다가 엉덩이 쪽은 새 범퍼가 달려있어서 예전답지 않게 업그레이드된 몸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삐까번쩍한 젊은 신차에 잠깐 눈길을 팔았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조강지차(車)와 재회를 해서 오늘도 그걸 타고 도로를 누비고 있습니다.

수리된 조강지차를 인수하면서 인증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