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집에서 사용하는 PC에는 동화상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회사의 PC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전에 계신 부모님 댁에 있는 PC도 역시 그렇다.
모두 USB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있어 그저 USB 커넥터에 꽂고 CD-ROM 드라이버만 올려주면 바로 내 얼굴을 볼 수 있고,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화상 미팅도 할 수 있다.
대전의 부모님께는 평소 자주 못 보시는 손자의 재롱을 넷미팅(NetMeeting)을 통해서나마 볼 수 있게 해 드리고, 아빠가 해외에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아들은 PC 카메라 속의 아빠에게 “선물 많이 사오세요”라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의 출장 가방 속에는 소니 VAIO 505 노트북과 함께 PC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해외에서의 인터넷 로밍서비스와 노트북, 그리고 PC캠이면 아쉬울 게 없다. 이게 재미들리다 보니 아예 카메라까지 내장된 소니의 C1 픽처북(PictureBook) 기종까지 살 생각을 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PC 카메라를 가지고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찾아 ‘화상채팅’이란 것을 시도해 보게 됐다. 아이미팅 혹은 씨앤조이 등과 같은 웹사이트에 들어가 무료 회원 등록을 한 다음 채팅 방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카메라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신기해 처음 한 두 시간은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이미 열려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보다 내가 새롭게 하나 만들어봐야겠다 싶어 방을 만들었다.
여럿이 정신없이 떠드는 것보다 단 둘이, 이왕이면 젊은 여인(?)과 있고 싶어 2명이 최대 인원이 되도록 했다. 제목도 여자만 들어오라는 내용으로 정하고,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들어온 것은 12세 소녀. 물론(?) 카메라는 없는 상대였다. 들어와 하는 대뜸 하는 인사는 “방가”. 대충 의미파악을 한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고 즉시 상대방은 “사실은 이 아이디 사촌 동생껀데요, 저는 실제로는 22살이에요”라고 했다.
몇 마디 오고 간 뒤에, 그쪽에선 한 가지 부탁해도 되냐고 물었다. 해 보라고 했다. 그 부탁은 놀랍게도 “남자의 그것 좀 보여주세요”라는 요구였다. “너무 보고 싶어요”라면서…. 그 부탁을 들어주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상대방이 누군인줄 알고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며, 또 뭘 믿고 카메라 앞에서 바지를 벗는단 말인가. 싫다고 말하자 남들은 잘 보여주는데 째째하다며 욕을 한마디 하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 이후로 그런 식의 이상야릇한 언사는 끊이지 않고, 그 웹사이트 전체에서 계속 볼 수 있었다. 결국 화상채팅에 대해 가졌던 처음의 흥미는 곧바로 사그러져 갔다. 사실 그들이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본명도, 성별도, 그리고 나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가짜 주민등록 생성 프로그램을 가지고 성별과 이름까지도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회원 등록을 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화상채팅이 아닌 일반 채팅이나 뉴스그룹, 게시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화상이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질리 만무하다. 대화실에 열려있는 다른 방들을 살펴보면 “서울사는 색녀만 들어와”, 혹은 “컴섹 할 사람”, 그리고 “나 지금 다 벗고 있다”라는 식의 제목들이 난무했다.
나중에는 여러 사람들이 정상적인 화상채팅을 하고 있는 방에 갑자기 누군가 들어와 얼굴은 보이지 않고 벗은 아랫도리만 카메라를 들이댄 뒤에 나가버리는 장난질도 목격했다.
한동안 몰래카메라로 찍은 동화상이 인터넷 상에 크게 유행했었다. 많은 섹티즌이 컴퓨터 화면 속의 훔쳐보기에 열중했다. 이제 화상채팅을 통해 자진해서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는 숨긴 채로 다른 사람이 자진해 보여주는 누드를 감상하기도 한다. 혹은 서로 카메라로 상대방의 몸을 보며 리얼타임 멀티미디어 사이버 섹스에 몰입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조만간 냅스터나 그누텔라가 음악파일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 주었듯이 세계의 사람들을 궁합이 맞는 남녀들(혹은 남남 또는 여녀?)끼리 1 대 1로 연결해 서로 얼굴과 몸을 보고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그 안에서 이성을 사귀고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은 요지경, 인터넷은 점입가경, 점점 핑크 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지금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윗 쪽의 PC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불안해진 나머지 카메라 렌즈의 방향을 벽 쪽으로 돌려버렸다. 갑자기 영화 ‘아메리칸 파이’에 등장하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줄도 모르고 주인공의 방에서 옷 갈아입던 그 여학생이 된 느낌이다. 그저 재미있게만 느껴지던 PC 카메라가 문득 무서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