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하고 있는 소닉블루는 Rio라는 브랜드의 MP3 플레이어를 주된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래서 국내의 MP3 업체들과의 만남도 잦은 편이고 필자 나름대로 한국 MP3 업체의 제품 소식이나 판매량, 그리고 수출 등에 대한 정보를 유심히 살피는 편이다.
그를 위해서는 물론 신문과 인터넷, 또한 기자들을 주된 소식통으로 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에게 한 번 질문을 던져 보자.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시장에서 팔린 MP3 플레이어의 양은 얼마나 될까?
각 업체마다 정확한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월 2만대 정도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작년 세계 시장에서의 MP3 판매량은? 이 또한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지만 필자의 추산으로는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200만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정도일 것이다.
지난해 약 100개에 달했던 한국의 MP3 업체들이 해외에 수출 계약을 했거나 추진 중이라고 신문 등에 발표했던 물량을 모두 합하면 과연 얼마나 될까. 대충 어림잡아 400~500만 대에 육박하는 양이 된다고 한다.
희망사항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 수치는 너무 많다. 바로 ‘뻥튀기’에 의한 결과이다. 별로 규모가 크지도 않은 MP3 업체들 가운데에서도 몇몇 업체들이 몇 십만대의 수출을 하기로 유럽의 바이어와 계약을 했다느니,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물량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소식들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가령 그들이 바이어와 서명한 계약서에는 초도물량 1만대로 시작해 최대 100만대까지 수출할 수 있게 하자라는 항목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그 1 만대의 물량도 모두 다 수출을 할 수 없었을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업체에서는 자신들의 규모를 크게 보이기 위해 100만대라는 숫자를 부각시켰을 것이고, 신문 등의 매체에서는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런 내용에 대해서 별 문제 삼을 필요 없이 기사화 했을 것이다. 뻥튀기는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인터넷 계통의 일을 하는 벤처업체들에게 시선을 돌려 보자. 그들은 갖은 노력을 들이면서 외부로부터의 투자를 유치하고 대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언론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물론 코스닥 상장이다. 그리고 그들도 위에서 보인 것처럼 뻥튀기를 즐겨한다. 유형의 전자제품인 MP3 플레이어를 다루는 전자기업은 일종의 굴뚝산업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덜한 편이지만, 인터넷 업체는 무형의 서비스를 상품으로 하는 특성 덕분에 더욱 현란한 기법의 뻥튀기를 할 수 있다.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런 회사들에게는 항상 추정재무제표라는 것이 있다. 어차피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회사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실적을 보여줄 수 없었으므로 외부에 그 회사에 대해 소개를 할 때에는 올해 말의 예상 실적을 시작으로 향후 5년이나 10년 뒤까지의 기업 재무제표를 추정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게 뻥튀기의 서곡이다. 가령 어느 벤처업체가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회사의 추정재무제표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한국 내의 모든 휴대폰 업체와 그 밑의 휴대폰 사용자의 숫자를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좀 말이 안 되겠지만, 그 휴대폰 사용자 전체를 이 벤처회사의 고객으로 가정해 그 회사의 미래를 설계한다. 조금 양심이 있으면70%나 50%로 줄이는 것은 선택 사양이다.
유료 서비스가 아닌 배너 광고 서비스로 매출을 올리는 벤처업체라고 하면 일단 야후코리아 같은 메이저 회사의 웹 페이지를 참고해 그 정도의 배너 광고를 유치했을 때의 수입을 산정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설사 그 정도의 배너광고를 유치한다고 해도 돈이 얼마나 벌릴 지는 모르는 일이다. 상당수의 배너광고의 경우, 서로 다른 회사끼리 돈을 주고 받지 않으면서 내 것을 네 웹 페이지에, 네 것을 내 웹 페이지에 실어주는 식으로 교환하는 ‘Banner Exchange’가 유료 배너 광고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아예 배너 광고를 유치할 수 없을 경우에는 너무 빈티가 나 보이니까 무료로 광고를 싣기도 한다.
어차피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이므로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뻥튀기의 규모와 방법도 발전한다. A라는 인터넷 업체가 B라는 업체에 컨설팅을 해주고 B라는 업체는 A라는 업체에 웹 페이지 작업을 해줬다고 하자.
실제의 비용은 중요하지 않다. 이 두 업체는 서로에게 해준 일의 가치가, 예를 들어, 10억원 상당이라고 말을 맞춘다. 그러면 실제로 인건비는 1000만원도 안 되는데도 이 두 회사들은 각각 10억원씩의 매출을 이루게 된다.
현금은 오고가지 않는다. 단지 문서상으로 상계될 뿐이다. 이런 류의 뻥튀기는 허다하다. 그런데 왜 문제가 안 되고 있냐고? 그 이유는 그런 일부 벤처인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남들도 다들 하는데…’, ‘다 그런 거지 뭐…’, ‘속은 놈이 잘못이지…‘ 그저 이런 식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하긴 투자자들의 잘못도 크다. 재무제표를 볼 때에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현금이 이 회사로 유입되는지를 보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 자본금을 가지고 있으냐에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또는 얼마나 그 업체가 겉으로 봐서 번지르르하게 치장했는지를 보기도 한다. 자본금이 많으면 좋은 일도 있다. 50억 자본금으로는 돈 까먹으면서 1년 정도 밖에 못 버티지만, 100억의 자본금이라면 2년도 버틸 수 있고, 그 돈 가운데 어느 정도는 따로 투자해 이자 수익이나 부동산 수익을 올릴 수도 있긴 할 것이다.
1년이든, 2년이든 회사 대표는 폼나게 살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외적으로만 회사를 평가하니까 벤처회사들이 그처럼 비싼 지역의 사무실을 임대해 온갖 장식을 다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제발 껍데기만 있는 벤처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뻥튀기하는 유행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정작 내실있는 기업이 외적으로 치장을 안 한다고 평가 절하되는 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벤처들끼리도 서로 등처 먹지 말고,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면서 공정한 거래를 했으면 좋겠다.
정말 제 살 깎아먹기를 하는 것만은 없앴으면 좋겠다.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은 바람이지만, 이런 바람들이 실제로 이 테헤란 밸리에서도 이뤄졌으면 한다. 이젠 “뻥이요”에게 안녕을 고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