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건강한 대한민국 장정들은 모두 최소 2년 몇개월 이상씩 복무한다는 군대를 필자는 가지 않았다. 징병검사에서 1급 수를 받았으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박노항 원사같은 사람을 통해 뒷거래를 해서도 아니다.
필자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5년동안 근무함으로써 소집 해제가 되는 이른바 기간산업 연구요원 특례 보충역 대상자였다. 요즘엔 제도가 바뀌고 명칭도 바뀌었지만, 한창 젊은 나이에 월급도 제대로 받으면서 경력도 쌓이고 또 직책도 올라가는 특례 보충역 제도는 필자와 같은 전자공학과 졸업생들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입사해보니 동기들 중에는 현역 복무를 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군대에서 보람된 생활을 했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반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군대에 가서 허송세월만 보냈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계속 머리속을 맴도는 것은 ‘군대가 젊은이들을 정체시키는 곳이 아니라 더욱 발전시키는 생산적인 곳이 될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지난해 필자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21살짜리 아가씨 두 명이 이틀 간 묵은 일이 있었다. 뉴질랜드로 가기 전에 며칠 간 한국을 관광하기 위해서였다. 그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었고, 2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복무를 하고 제대한 후, 이제 1년 동안 뉴질랜드에 가서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저녁에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군대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두 명 모두 군대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고, 이제 해외 경험을 한 뒤 이스라엘로 돌아가서는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적인 하이테크 기업이 무척이나 많다. 인터넷 폰 기술을 처음 내놓았던 보칼텍(VocalTech), 인터넷 메시징 업체인 ICQ, DSP 기술을 자랑하는 조란(Zoran), 세계 최고의 기업용 인터넷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인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Check Point Software), 하드웨어 락 방식의 보안 장치를 만드는 알라딘(Aladdin)과 하스프(Hasp) 등 무수히 많은 업체들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주식시장에 미국과 캐나다 회사 다음으로 상장 회사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런 회사들의 발전의 배후에는 군대라는 조직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대다수 18세 젊은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하이테크 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는 곳이 바로 이 ‘군대’였다고 한다.
어느 부대에 있었느냐에 따라 벤처 기업의 인맥이 강력하게 엮어지기도 한다는데, 그것은 그 부대에서 주로 어떤 기술을 다루느냐에 따른다고 한다. 많은 하이테크 업체 설립자들에게 기술을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상당수 사람들이 군대에서 배웠다고까지 한다고 하니 정말 군대를 가지 않고는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박노항 원사때문에 전국이 떠들썩하고 벤처회사 창업자이자 병역 특례 대상자인 사람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서 테헤란 밸리도 그리 조용하진 않은 요즘, 이처럼 이스라엘의 군대 시스템에 대해 부러움이 더해 간다.
얼마전 대통령이 군 지휘부에 대해 칭찬하면서 ‘수십만 명의 정보 검색사를 배출’한 데 대해서 꽤 긍정적으로 언급했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필자 주변엔 요즘 제대한 사람이 없어 정확한 실상은 모르겠지만 군대에도 정보화 바람이 불면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젊은 장정들이 청춘의 몇 년을 보내는 군대에서는 그보다 더 차원높은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다.
결코 그들이 허송세월을 했다거나 단지 정신적인 수련이나 육체적인 단련만 했다라는 기억만 갖게 하지 말고, 군대를 이용해 더 차원높은 기술입국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군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