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면, 필자가 대학 시절의 전공이 전자공학이었고 부전공이 전자계산학이었던 것은 30년쯤 전인 초등학교 시절부터 꿈꿔 왔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철인 28호를 시작으로 우주소년 아톰, 마징가 제트 등의 만화를 거치면서 갖게 된 과학 만능주의, 특히 로봇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만화 속에서는 이른바 김 박사 혹은 최 박사 등으로 이름붙은 사람이 망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나서면 천하무적 로봇은 그렇게 쉽게 탄생하곤 했다. 로봇의 지능은 당연히 인간보다 뛰어났고 아톰같은 경우에는 아예 인간보다도 깊은 감성을 지니기까지 했다. 그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서 로봇은 정말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렇게 필자도 로봇을 연구하는, 만화 속에서처럼 콧수염에 안경을 쓴 ‘김 박사’가 되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대머리 김씨 아저씨 모습으로 돼가고 있지만 말이다.
며칠 전 본 A.I.라는 영화에서도 로봇이 등장한다.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무서워할 줄도 알며, 육체의 고통까지도 느낄 수 있는 언제인지 모를 먼 미래의 로봇이다. 이 로봇은 심지어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피노키오 동화 속의 녹색 선녀를 찾아 나서는 행동까지 서슴치 않는다. 현대, 그리고 미래의 인간들은 이미 대부분 잊어버렸을 그 전통적인 인간성을 간직한 셈이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혹은 인간과 닮고 싶어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는 또 있다.
A.I.보다 조금 이전에 상영됐던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빈 윌리암스는 한 인간 여자를 사랑하는 똑똑한 로봇으로 나와서 인간처럼 사랑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며, 먹고 자는 것까지 똑같이 할 수 있게 스스로를 개조한다. 그러나 거의 반영구적으로 죽지않고 동작할 수 있는 점 때문에 인간과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자 아예 늙어죽는 메커니즘으로 스스로를 바꿔버리고 결국 사랑하는 인간 여자 옆에서 숨을 거둔다(혹은 그 동작을 멈춘다).
SF 영화의 80년대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위적으로 수명이 제한된 로봇이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각각 프로그램된 유효기간이 있어서 로봇들 중 몇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수명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 자신들을 개발한 과학자를 찾아가서 협박하다가 살해하게 되기도 한다. 그 로봇들 모두 인간만큼 똑똑하고 인간보다 더 강인한 존재였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영화 속에서도 각 편마다 계속 로봇들이 모습을 보이는데 최종편인 ‘에이리언 4’에서는 위노너 라이더가 예쁜이 로봇의 모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대를 더 앞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 해 동안 A.I.를 기획해 오다가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세상을 뜬 괴짜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전설적인 SF 영화 ‘2001: Space Odyssey’에서 목소리로만 출연한 인공지능 로봇 HAL이 있다. HAL 역시 죽음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자신의 전원을 차단하려는 인간에게 애처롭게 호소한다. ‘로보캅’에서는 아예 막강한 전투 로봇들에 의해 살해되는 인간들의 피로 화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영화 속에서의 로봇은 이렇듯 지나치게 발전되어 인간의 영역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A.I.라는 단어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이다. A.I.라는 학문이 유행처럼 퍼져서 너도 나도 그 연구에 뛰어들었던 것은 60년대와 70년대쯤이었나 보다. 그 당시에 꿈 많은 컴퓨터 과학자들은 모두 A.I.의 기술이 곧 무르익어서 소설 속의 로봇과 같은 기계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 기대와 꿈의 영향을 입은 것이 그 당시 소설이었고, TV였고, 만화였고, 그리고 영화 산업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당시 필자 또래의 어린이가 그 영향을 흠뻑 흡수해 오늘의 우리가 됐다.
A.I.라는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상념은 그런 정도의 능력을 지닌 로봇이 과연 출현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쯤인지에 대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이 두려워한 것은 인간만큼 능력있는 로봇의 탄생이었고, 또 우리 인류가 멸망한 뒤에도 로봇은 길이길이 번성할 것이라는 두려움, 혹은 질투때문이었다. 하지만 먼 훗날 있을지 모르는 인류의 멸망 이전에 그런 정도의 로봇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도 그런 영화 속의 성능에 반의 반 정도라도 가까이 발휘하는 로봇을 보는 것은 죽을 때까지도 힘들 것이라고 보는 게 필자의 예측이다.
아직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XP에는 음성인식 기능이 들어있다고 한다. 또 그들이 시제품을 내놓은 태블릿 PC에도 필기체 인식 기능이 들어있어서 키보드 없이도 문장을 입력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음성인식 연구이건 문자인식 연구이건 도대체 몇 년을 해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히 나아진 것을 볼 수가 없다.
그저 인식 가능한 단어의 개수만 늘어가고, 인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짧아진 정도가 느낄 수 있는 차이라고나 할까. 필기체 인식의 경우에는 옛날 옛적의 애플 뉴튼 시절부터 윈도우 3.1에서의 펜 윈도우, 그리고 요즘의 PDA에서 볼 수 있는 필기체 인식에 이르기까지 연구에 들인 시간 앞에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효율성을 앞세우는 현대 사회에서 키보드의 위치는 확고한 셈이다.
음성인식과 문자인식같은 것을 기본적인 로봇 입력장치의 한 부분으로 본다면, 아직 한참 갈 길이 멀다. 인공두뇌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인간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혼다(Honda)의 아시모(Asimo)처럼 인간과 흡사하게 걸어 다니는 로봇, 그리고 MIT의 키스멧(Kismet)처럼 여러 가지 표정을 짓게끔 프로그램된 로봇들이 개발된 것을 보면 그래도 고무적이긴 하다. 과연 우리가 지나치게 똑똑해진 나머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지는 로봇을 보게 될 날이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