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 게 새집 다오

By | 2002-05-02

지난 2월 1일자 컬럼이 마지막이었으니 다시 이 곳에 글을 올리는 오늘은 정확히 3개월이 지난 다음이다. 그 석 달 동안 전념했어야 했던 일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모 회사와 진행한 프로젝트 수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집 짓는 일이었다.

필자의 예전 컬럼을 읽었던 독자분들이라면 작년 말에 이 곳에 올렸던 “다시 촌놈이 되려는데” 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게 말로만 끝난 게 아니라, ‘한다면 한다’라는 자세로 진짜로 시골에 집을 짓는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가 있어서 몇 달 동안 열심히 일도 했던 것이고….

사실 석 달 동안 내내 건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3월초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두 달 정도 경과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100% 완공되지는 않았다. 조립식 주택 주제에 꽤 걸린 셈이다. 그래도 이번 주말까지는 집 자체의 공사는 대략 완료될 것이고 그 뒤로 일주일간은 집이 앉아있는 땅에 도로도 깔고 나무도 심는 토목과 조경 공사를 마무리하게 되어 이달 중순께면 이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에 필자가 ‘집짓겠다’라고 했을 때 적지 않은 분들이 새 집에 놀러 오겠다고 하셨는데 당연히 환영이다. 휴일을 맞아 남한강 인근이나 강원도 쪽으로 놀러 갔다가 길이 막히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생각하셔도 좋다.

독자 여러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부분이 있으리라. 바로 어떤 모습의 ‘정보화 주택’인지, 혹은 어떤 식의 하이테크가 숨어있는 집을 지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사실 그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가졌던 욕심을 공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줄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비용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한편으론 현장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 제대로 따라와 주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지금 거의 완성되는 상태에서 보는 집은 그리 필자의 욕심을 채워주진 못하는 상태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구현된 내용이 있기는 하다.

요즘의 최신 아파트 현장에서는 홈네트워킹이니 뭐니 하면서 최신 기술이 도입되기도 하지만, 일반 주택을 짓는 현장에서는 대개 통신공사라는 게 없다. 단지 전기공사를 하는 분들이 도급으로 전기 공사를 하면서 전화선과 현관 인터폰을 가설하는 게 거의 전부이다.

그 분들에게는 220V 전원을 공급하는 전선은 모두 함께 묶어버리고, 전화선도 그처럼 모두 브리지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LAN 공사를 해봤던 전기공사 업자를 찾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UTP 케이블이 어떻고, LAN 케이블을 연결하는 RJ-45 잭은 무엇이고 설명하여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LAN 공사를 포함한 사무실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을 알긴 했지만, 그분들을 활용하는 것은 값이 좀 비쌌을 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철판 벽을 일일이 잘라내어 공사하는 일은 사무실 공사와는 또 다른 분야였다.

다행히도 LAN 공사를 할 줄 아는 전기공사 업자를 찾았고 네트워크 케이블 설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LAN 케이블이 연결되는 RJ-45 포트는 거의 모든 곳에 만들어놓았다. 안방, 아이방, 손님방, 주방에는 2개씩 뽑아놓았고, 거실은 보통 방보다 넓으므로 양쪽 벽면에 1개씩 뽑았다. 필자의 작업실 겸 거실로 쓰이는 2층 다락방은 4개의 RJ-45 포트가 나와있다. 전화, 팩스, 인터넷 공유기와 외부 인터넷 인입선을 모두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각 방의 RJ-45 잭들은 모두 Category 5 규격의 UTP 케이블을 통해 지붕 아래의 빈 공간에 집결되는데 그곳에는 통합 단자함 2개가 설치돼 있다. 이 단자함은 사무용 건물에서 전화와 LAN 접속을 함께 관리해 주기 위해 사용되는 IDF(Intermediate Distribution Frame) 배선반과 비슷한 기능을 해주는데 각 방에 나와있는 RJ-45 잭 2개의 기능을 LAN으로 할 것인지 전화 회선으로 해줄지를 설정할 수 있다. 즉 방마다 나와있는 RJ-45 잭 2개가 각각 LAN 포트로 쓰일지 전화 회선으로 쓰일지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자제품이나 통신장치를 쓰면서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확실한 접지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집안의 220V 전원 콘센트를 보면 전압이 걸리는 2개의 구멍과 함께 접지핀이 함께 나와 있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연결하면서 전기공사를 하는 주택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될까? 안전을 위해서나 각종 컴퓨터, 통신, AV 기구의 성능을 위해서는 이 접지의 구현이 아주 중요한데도 말이다. 필자는 당연히 접지를 확실히 할 것을 공사 업자에게 요구했다. 모든 콘센트의 접지 단자를 모두 연결해 대지에 접지 전용 금속판을 통해 접지시키는 것이다.

이밖에도 각 방마다 110V 콘센트도 함께 설치했다. 미국에 살던 시절 구입했던 전자제품들을 쓰느라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변압기(일명 ‘다운도란스’!)를 몇 개씩이나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붕 위에는 피뢰침도 설치했다. 주변에 인가가 별로 없고 나무만 무성한데다가 필자의 집 자체가 금속판으로 만든 벽체로 이뤄져있고 위성 안테나가 지붕에 2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재택 근무를 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터넷 연결은 아직 결정이 안됐다. 양평 전화국에 문의해 보니 동네 초입까지는 메가패스를 설치한 적은 있는데, 그 안쪽으로는 설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필자의 집까지는 전화선이 약 2Km를 더 와야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 다음주 쯤에 전화를 가설하면서 통신품질을 측정해야 분명해질 일이다. 만약 ADSL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할 수 없이 위성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

이사하게 되면 지금의 집에서 사용중인 두루넷의 케이블 모뎀을 참으로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항상 연결돼 있는 상태이고 상향 속도와 하향 속도가 비슷하게 나오는 것은 ADSL이나 위성 인터넷에선 지원되지 않으니 말이다.

DVD를 보면서 입체음향을 즐기기 위한 서라운드 스피커용 케이블 단자도 벽속을 통해 벽 위에 빼놓았다. 그걸 제대로 활용할만한 AV 기기도 없는 상태이지만, 이왕 공사하는 김에 같은 값이면 최대한으로 전기공사 업자에게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보안을 위한 감시카메라용 동축케이블은 집 앞과 뒤쪽으로 빼놓기는 했지만 사용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대학 동기가 DVR(Digital Video Recorder)을 만드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혹시나 공짜로 한 대쯤 테스트용으로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준비만 해놓았을 뿐이다. 사실 시골에 집 짓고 살면서 온갖 보안장비를 밖에 보이게 설치해 놓고 또 대문에는 캡스니 세콤이니 하는 사설보안업체의 명패를 달아 놓는 것은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지어놓은 집에 정작 그 아름다운 창문틀에는 까만색 적외선 접근 감지 센서를 창마다 몇 개씩 달아 놓는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집 지으면서 있었던 일, 생각했던 것들을 얘기하라면 참 많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필자의 가정 경제는 적자 상태로 돌아버린 것이 가장 신경쓰이는 일이다. 재택근무 형태의 프리랜서 생활을 통해서 적자를 복구하긴 어려울 것인지라 당분간은 현재처럼 출퇴근하면서 계약직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2층 다락방에 만들어놓은 서재에서 푸른 숲을 바라보며 일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약 20년은 충청도민이었고,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의 20년은 서울시민이었다. 이제 경기도민이 되어 앞으로의 20년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사를 앞둔 지금 감회가 새롭다. 일단 하이테크라는 것을 조금 집에 적용하고 보니, 과연 그게 좋은 일인가 싶은 감도 생긴다.

언젠가는 전화도 전기도 없는 그런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지지 않을까도 싶다. 가끔은 인간과 자연이 그대로 한가지로 되는 것을 꿈꾸기도 해서이다. 아마도 20년이 더 지나서 환갑쯤 되면 그런 모습을 충분히 반영한 삶의 모습을 갖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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