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겨자먹기’라는 속담이 있다. 먹으면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나올 정도이지만 그래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눈물을 쏟으면서라도 겨자를 먹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각자 그런 상황에 부딛치는 일은 많이 있을 터인데 요즘엔 한 두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지하철 요금이 대폭 올라도, 휘발유값이 급격히 인상돼도 사람들은 계속 학교에 가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그런 경우에 불만이 있어도 결론적으론 어쩔 수 없다. 담뱃값이 대폭 인상된다는 소식에 흡연가들은 화가 나서라도 계속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술값이 올라도 음주가들은 여전히 술을 마신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값을 올려도 결국은 그게 정상으로 고착돼 버리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인터넷 종량제의 실시 의지를 슬며시 들고 나왔다가 다시 조용해진 KT에서 이번에는 IP 공유기의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또 다시 들고나왔다는 소식이다.
자세한 내막은 물론 알 길이 없다. KT의 홈페이지에도, 메가패스 서비스의 홈페이지에도 그런 의도를 고객들에게 설명하는 글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 소식은 단지 신문 지상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KT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의 목소리는 없었고 IP 공유기 금지에 관한 어느 신문의 내용을 인용한 것만 볼 수 있었다. 마치 나는 모르겠는데 남이 그렇게 얘기하더라는 식으로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떤 식으로 사용자들을 자극하던간에 KT는 위에서 언급한 표현처럼 결국은 고객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라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KT의 IP 공유기 금지 계획은 약간 세부적으로 보도된 상태이다. 우선 올 하반기까지는 단말 측에서의 공유기 연결 여부를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할 것이라고 하며, 그 이전에라도 공유기의 사용이 의심되는 소비자들의 집을 방문하여 그 여부를 확인한 뒤에 강제 해지를 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어차피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KT에게 묻고 싶은 말이 참 많다. 우선 IP 공유기의 사용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믿는다면 왜 불법이라는 것인지 그 근거를 다수의 사용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보라. 도대체 왜 맨날 언론에게만 슬쩍 이런 소식을 거듭 흘리면서도 정작 직접 나서서 총대를 들고 그 필요성과 합법성을 주장하지 않고 있는가. 매도 자주 맞다보면 만성이 되듯이 이런 소식을 자꾸 듣다보면 나중에 실제로 KT의 뜻이 실현되어도 소비자들이 무감각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음에서인가?
그리고 사실 필자는 이미 종량제가 어느 정도 구현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현재 KT의 메가패스 ADSL 및 VDSL 상품에는 몇가지 옵션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라이트, 프리미엄, 스페셜 등이 있는데 이 순서대로 최대 속도, 즉 다운링크의 속도가 정책적으로나 혹은 기술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상태이다.
즉 메가패스 라이트의 사용자는 약 2Mbps 전후에서 최대 전송속도가 제한되어 있다고 본다면 1년 365일을 매일같이 24시간 내내 그 속도를 100% 이용한다고 할 때에서야 소비자가 최대효용가치를 가지고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정보를 이용하고 싶어할 때는 더 많은 요금을 내고 프리미엄이나 스페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니 이게 이미 절반은 종량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나에게 주어진 대역폭을 최대한 사용하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KT에서는 전체 사용자 가운데 IP 공유기를 쓰는 5% 정도가 전체 트래픽의 절반 가까이를 쓰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가패스 라이트 서비스에 가입해 있는 사용자가 공유기를 사용하면 프리미엄급 내지는 스페셜급 서비스의 속도까지 내게 되어서 문제라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저 각각의 소비자에게 주어진 최대 트래픽 용량을 나름대로 쓰고 있을 뿐이다. 언론에 보도된 KT의 주장은 그 기본 근거가 너무도 약하다.
일부 지역에서만 서비스되고 있는 VDSL 서비스가 A소비자의 가정에 60 Mbps 속도로 연결돼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소비자는 IP 공유기 없이 한대의 컴퓨터만 사용하되 그것을 24시간 내내 켜놓고 그 최대 트래픽을 최대한 이용해 동화상을 업로드 및 다운로드 하고 온라인 영화나 TV 프로를 시청하고 있다고 하자. 그 반면에 B소비자는 2 Mbps의 속도로 연결되는 메가패스 라이트 회선을 공유기에 연결해서 가족끼리 나눠쓰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과연 누가 인터넷 트래픽을 더 많이 잡아먹고 있다고 보는가.
그것도 다 좋다. 결국은 KT의 뜻대로 공유기가 금지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공유기의 범주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가장 흔한 공유기는 외장형으로서 입력에는 ADSL 모뎀의 출력이 연결되고 출력으로는 LAN 포트를 4개 혹은 그 이상 제공하는 형태를 갖는다. 이런 것을 금지 대상의 IP 공유기라고 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외장형 공유기를 따로 설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SE 부터 시작해서 2000, XP 에 이르기까지 계속 제공되면서 운영체제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ICS (Internet Connection Sharing), 즉 인터넷 공유 기능이다. 아무 컴퓨터에나 LAN 카드를 두 개 꽂기만 하면 인터넷 공유를 할 수 있고 허브만 추가해 주면 수많은 PC에서 인터넷 회선을 공유할 수 있는데 KT가 금지하려고 하는 대상에는 이것도 포함되는가?
한편으로 요즘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또 802.11 계열 무선랜의 활용이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LAN 케이블에 구애받지 않고 안방에서나 거실에서 혹은 베란다에서도 마음껏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무선랜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인데 최근에 가격마저도 일반 공유기 수준에 아주 가까워졌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없어져서 이용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무선랜의 또 다른 기능이 바로 인터넷 공유 기능이다. 일단 ADSL 모뎀에 액세스 포인트 (AP, Access Point)만 설치하면 사방 어느곳에서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다수의 컴퓨터가 무선으로 동시에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KT에서는 이런 무선랜 액세스 포인트 또한 금지 대상 IP 공유기로 간주하겠다는건가?
설마 오늘날의 무선 접속 시대의 조류를 온몸으로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닐 터이고 보면 여기서도 IP 공유기 금지 정책의 근거가 희박함을 확인할 수 있다.
KT가 직접 밝히지 않으니 또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전제하는 수 밖에 없는데 아무튼 언론에 의하면 “감지 시스템 적용 이전에도 IP공유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가입자에 대해서는 공문 발송과 함께 현장 점검을 통한 회선제공 중단 등의 조치를 시행, 강경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현장 점검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KT 직원이 임의대로 소비자 집에 들어가겠다는건지, 아니면 법원 영장을 발부받아서 그 집행을 하겠다는건지, 아니면 KT 직원이 메가패스 회선 보수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소비자의 동의를 받아 들어가겠다는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신문사에서 맘대로 쓴 것은 아닐테고 각 신문과 인터넷 지상에서 모두 같은 내용의 표현이 보이는 것을 보면 분명히 KT에서 그런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한 것이 분명한데 그 근거와 실현가능성이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백본 트래픽이 과다하게 커진 것은 각 인터넷 회선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고속 접속을 제공했기 때문인데 왜 그걸 소비자들 탓으로 돌리는가. 5%의 가입자들이 전체 트래픽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게 문제라고 말하기보다, 나머지 95%의 가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1 Mbps의 속도로도 충분할 것이므로 그들을 위한 더욱 저렴한 비용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겠다는 식으로 나서면 안 될까?
여기서 KT에게 권고하고자 한다. 솔직히 필자의 경우에는 1 Mbps 속도라도 100% 정상적으로 서비스된다면 전혀 불평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필자의 본가와 처가에서 사용중인 인터넷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이고 필자가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마찬가지 경우이다. KT는 차라리 인터넷으로 메일 주고받고 정보 검색하고 신문 보고 바둑 두고 카드놀이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가격 인하의 정책 내지는 더욱 염가의 서비스 제공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종량제를 만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맨날 세계 최고의 인터넷이니 인터넷 강국의 자존심이니 뭐니 광고해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언론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경만 긁지 말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종량제니 IP공유기 금지니 뭐니 하는 식의 본질을 벗어난 정책이 아닌 정상적인 서비스 제공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므로 서비스 제공업체 뜻대로 소비자들은 결국 울면서도 매운 겨자를 먹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지만 인터넷 세상에선 맘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예전의 유선 전화기 시절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