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뒤에는 무슨 말이 붙어도 그 말하는 사람은 보통 측은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하찮게 보이고 있음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옷을 허름하게 입은 사람이 “나 이래 봬도 왕년에 패션 모델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고, 도저히 미남이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나 이래 봬도 왕년에 꽃미남이었어”라고 할 수도 있다. 남에게 무시받다가도 “나 이래 봬도 왕년에 한가닥 하던 몸이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참 측은해보이기까지 한다.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들 있다. 지금의 나는 비록 이렇게 별볼일 없지만 과거엔 화려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직접적인 고백을 절대 하질 않는다.
이 표현은 과거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물론 어느 정도 나이든 사람들이 주로 쓰게 된다. 특히나 길거리에서 노인네들이 술에 취해 꼬장 부리면서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모습은 참 흔하게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은 거의 안 쓰는 표현이고 할아버지들이 애용하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과거에 한가닥씩 했던 것일까? 어치피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는 곳에서 진실은 중요치 않다. 오래전에 장소 불명의 지역에서 있던 일이라서 확인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나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애처러운 몸부림에 허세를 입혀서 말하는 것 뿐이다.
내가 만약 나이 들어서 저렇게 심리적으로까지 쪼그라들면 나도 과연 “내가 왕년에는..” 으로 시작하는 말을 하게 될까? 내가 과연 무엇이었다고 뻐기면서 남에게 저런 식으로 애처러운 몸짓을 하게 될까. 생각해 보면 별볼일 없다. 구지 하게된다면 그냥 이렇게 한마디 하고 말겠다.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던 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