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전에 집을 나와 일산의 웨스턴돔이라는 커다른 몰에 들어가서 혼자 앉아서 며칠전에 구입했던 책도 읽고, 혼자 점심도 먹고, 혼자 영화도 봤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고 정신적으로는 더욱 파탄에 빠질 것 같아서였다.
점심은 모처럼 오랫만에 먹어보는 베트남 쌀국수. 포베이라고 하는 프랜차이즈는 그리 작은 곳도 아닌데 가장 기본이라고 할 쌀국수는 100점 만점에 40점 밖에 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무슨 쌀국수 면발이 마치 밀가루 국수처럼 탁탁 잘리면서 쫄깃한 맛도 고소한 맛도 아무맛도 없이 만들었을까. 양지머리라는 고기도 전혀 고기맛이 나지 않는 불량고기 느낌이었다. 게다가 물도 미리 안주고 소스를 따라놓을 종지도 안주고 나중에 따로 달라고 해야 그제서야 가져다주는 것은 또 왠 서비스 센스. 그저 그런 칼국수 수준의 음식을 8천원에 먹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기 직전이었다. 그저 오랫만이니까 참는다고 혼자 위로해가며 다 먹었다. 고수 나물을 달라고 할랬더니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않았다. 이것도 오랫만이라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겨우 실란초라는 이름이 기억해내서 주문할 수 있었다. 혼자 먹으려니 맛과 서비스의 질에 더 민감해진게 아닐까.
영화는 쟈니뎁 과 크리스챤 베일 주연의 퍼블릭 에너미. 일부러 디지털 상영관을 골라 봤는데 역시나 얼굴 클로즈업을 하면 솜털과 땀구멍까지 하나하나 잘 보였다. 쟈니뎁은 나랑 동갑이라 역시 눈가에 주름도 나만큼 보인다. 함께 나이 먹어가는 동질감을 잠깐은 느낄 수 있었으나 세계적인 스타와 무명의 백수와는 영 비교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다. 영화 끝에 은행강도인 쟈니뎁이 총맞고 죽는 장면에선 눈물이 찔금 나올뻔 했다. 딱히 영화의 내용에 이입되어서 슬펐던 것은 아니고 아 저렇게 누군가 죽는구나, 죽어가면서도 자기 여자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아주 원초적인 이유때문이었던 같다. 애초에 내가 눈물 흘리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언제 흘려야지 계획한 것도 아니니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엔 아직 다 못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재미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너무도 프랑스적인 잔재주와 등장인물들,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 신화 내용의 많은 인용, 대목대목 잘게 끊어지는 내용은 빠른 호흡으로 긴장감 있게 몰입시켜주지는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까지는 번역하지 못한게 아닐까도 싶고, 한번 훌쩍 읽어내려가기 쉽지 않은 다양한 명칭과 용어들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읽는 것은 1권인데 마지막 6권까지 다 읽게될지는 일단 이것을 다 읽어보고 결정해야할 일이다. 오늘 밤까진 다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집에 와서는 한가지 더 먹은게 있다. 바로 타이레놀이다. 아마도 어제 살짝 체한 것과 오늘 점심으로 먹은 쌀국수의 불만족이 합쳐서 뇌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나보다. 이게 타이레놀 한알로 해결되려나 모르겠다. 어제 그제 연속으로 개꿈을 꾸면서 잠못잔 피로가 쌓인 것도 큰 이유가 될 터이니 오늘은 한번 잘 자볼 수 있기를 기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