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항상 자신이 애인에게 하는 이야기는 ‘거의’ 진실에 가깝다는 점에 대해서 개인적인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99%의 진실성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수치상으로 볼 때 다른 어느 누가 나만큼 많은 진실을 배우자와 공유하고 있을까라는 다소 억지스런 자만을 하며 생활한다. 나머지 1%는 그 많은 진실 가운데, 그 많은 사건과 사물과 생각들 가운데 단지 몇가지 항목일 뿐이다.
어쩌면 그 나머지 1%는 A와 그 애인과의 관계에서의 중요도로 따질 때 50%, 아니 90% 이상의 가중치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A는 가중치는 사소한 요소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갯수를 놓고 따질 때의 99%의 진실성으로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나름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식의 통계적 수학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진실성의 수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 틈만 나면 그녀에게 계속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도 않는 회사 얘기와 가족과 친척과 친구, 혹은 유명 연예인들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최대한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그는 이런 식으로 진실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사실 A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그녀가 캐묻지 않는 민감한 사실을 구태여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이럴 경우엔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가끔씩 그만의 비밀과 관련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가 연결되려 할 땐 매끄러운 실력으로 주제를 우회시킨다. 그래도 어쩌다 한번씩은 작은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크기는 작되 그 파급효과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안에 있어서의 거짓말이다. 그는 그것이 갯수에 있어서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확률적으로 아주 드문 빈도를 갖는 일일 뿐이다.
이야기않는 진실의 갯수가 일정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 진실의 갯수가 계속 늘어난다면 진실성의 비율은 99% 에서 99.9%로, 다시 99.99%로 점점 커갈 것이다. 그는 수학은 싫지만 이 진실 이론은 맘에 들어한다. 유효자리 규칙까지도 정하고 싶다. 그렇다면 반올림해서 100%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고 A는 그녀에게 100% 진실한 남자로 규정되리라. 갯수는 중요치 않다. 수치적인 결과가 모든걸 해결해준다는 믿음은 계속 강해진다.
그가 생각하는 진실 이론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실에서 순도 100% 의 진실이어야만 바람직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생고기 스테이크도 약간의 소금과 후추와 허브가 필요하듯이,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감칠만 나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선 1%의 특별한 조미료, 혹은 이물질이 필요하다는게 그의 이론이다. 그는 자기합리화의 대가이며 동시에 자기 은폐의 매스터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도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정을 애인에게 들키기 않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