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사업을 하는 친구를 방문해서 사무실 건물 지하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리를 잡고 내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앞쪽에서 등을 보이고 향해 앉아있던 어떤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속으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사람일까싶어 기억을 더듬어봐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왜 내 목소리를 듣고 뭐라고 중얼거렸을까 싶었다. 조금 뒤에 그 사람이 나가면서 식당 주인에게 하는 얘기를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저 사람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나는, 그리고 나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는, 항상 목소리를 적당히 알아들을 만큼만 높이고 나긋나긋 얘기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목청 큰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그런 내가 남에게 불평을 살 만큼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인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으므로 난 다행히 내 목소리의 음량을 잘 느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하… 사실이 그랬다. 내 목소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만큼 커져 있었다. 정말 그랬다.
이렇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간단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지 딱 두 달이 되어가면서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난청 증세를 지닌 아버지에게 계속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목청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얘기를 해도 아버지는 알아듣지 못하고 사오정 벽 긁는 대답만 하시곤 해서 같은 내용을 연거푸 큰 소리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내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캐나다에서 어떤 한국사람을 도서관 안에서 만났을 때 갑자기 울려퍼진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눈치를 봐가며 급히 안녕을 고하고 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식당에서 목청 큰 사람을 또는 어느 가족 전체를 보게 되었을 때엔 짜증을 내며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밥을 먹은 적도 있었고, 지하철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들이 그 안에 함께 탄 다른 승객들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몽땅 까발리겠다는 듯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때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리도 센스가 없냐, 왜 아무 생각없이 사느냐는 식으로 내심 흉보곤 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그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참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목소리 큰 것도 직업병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시끄러운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처한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밖에 또 무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이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목소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다른 행동 패턴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러 남에게 피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러다가 남에게서 비난을 받으면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그 문제를 고치지 않거나 오히려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런 심리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마치 내가 요즘엔 차를 차분히 몰면서도 차를 빨리 몰거나 이리저리 추월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한때는 급출발하기도 했었고 고속주행하기도 했었고 급회전을 하거나 다른 차들이랑 신경전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지금 그런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크거나 혹은 다른 민폐를 끼치는 것들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이 나로서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심플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