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웹페이지의 어느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글에 누군가의 답글이 붙고 이에 대해 원래의 질문자는 간단히 이렇게 댓글을 쓴다. “그래요? 그런걸줄 몰랐네요..” 답변자는 이걸 보고 기분이 좀 나쁘려고 한다. “그래요”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충분한 존대어가 아닐뿐 아니라, 댓글 쓴 사람의 의중이 완전한 긍정이기보다는 ‘그게 아닐텐데..’ 혹은 ‘그런걸 답변으로 올리냐…?’ 또는 ‘그 정도 답변은 나도 알지..’ 정도의 심리가 들어있다고 여겨져서이다. 진실은 알길이 없다. 실제로 그런 고까운 심리를 가지고 쓴 것인지, 아니면 그이의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인지, 단순 실수인지 알 길이 없다. 그걸 쓴 사람도 글을 썼을 당시의 자신의 심리상태에 알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이정도로 생각이 흘러가면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요?’ 대신 쓸 수 있는 말은 ‘그런가요?’나 ‘그렇습니까?’ 정도가 가장 의미가 같을텐데 이때는 존대의 단계가 조금 달라지면서 듣는 사람에게 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반문하는 형태가 아닌 ‘그렇군요’, ‘그렇네요’ 등은 또 완전히 느낌이 달라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별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상에서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에선 또 다른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표정과 혼자말과 목청과 억양 등이 복합되어서 아주 복잡한 표현을 만들고 그에 대해서 또 복잡한 반응을 창출해낼 수 있다. 그래도 거기까진 정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요’로 끝나거나 ‘까’로 끝나는 존대말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어느 순간 ‘에이, 아니지…’ 라던가 ‘흠, 그런가…’ 라는 식의 혼잣말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면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감정의 충돌을 막고 있던 보루가 무너지는 것은 바로 말의 존대 수준이 낮아지기 시작하면서이다. 어느 한편이 아예 반말로 나오기 시작하면 문제는 이제 서로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닌, 감정적인 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제 본론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괘씸하다’, ‘버릇없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너 몇살이냐’, ‘어린것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 ‘감히 누구에게 반말이야’,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어딜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냐’ 같은 쪽으로 싸움이 시작된다. 누구 생각이 옭고 그르냐는 것이나 논리적인 토론은 이제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 항상 깍듯이 존대말을 쓰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고 글을 쓸 때에도 상당히 공들여서 존대말을 정확히 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요즘 나는 한국어의 존대말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곤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 때문에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논쟁이 엉뚱한 쪽으로 흐른다. 화를 나게 만들고 기분 나쁘게 만들고 사람들의 감정을 너무도 자극하기 쉽다. 존대말을 쓰지말고 모두 반말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존대’와 ‘하대’를 구분하는 언어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애초에 한국어의 특징이 논리보다는 감정적인 면을 전달하는 것이 강한데 여기에 존대라는 개념이 들어가면서 존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너무도 심하게 부각되어 보인다. 더이상 신분사회도 아니고 충효 사상이 사상의 근본이 되는 조선시대도 아닌 오늘의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문제의 해결이나 건설적인 방향으로의 심도있는 반전보다는 감정의 충돌에 더 많은 원인제공을 하는 존대말과 경어 개념의 존재… 우리 사회의 심도있고 창조적인 발전 방해하는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엉뚱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