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다시 찾아 왔나보다

By | 2011-01-24

공황에 대해 나의 개인적인 해석은 이렇다. 공황을 겪는 순간에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심장이 너무 빠른 속도로 뛰어서, 혈압이 너무 높아서, 온몸에 힘이 빠져서, 어지럽고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들이 심하게 나타나면 우리의 뇌는 그걸 바로 죽음과 연계시켜 반응하게 되고 그 때문에 공황 증세는 더욱 심한 상태로 옮아가서 최악의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이른바 공황발작이다. 이런 발작을 겪고 난 이후에 걸핏하면 그런 공황을 연상하면서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그게 공황장애가 되고, 그러면서 온갖 불안을 안은 채 떨고 있으면 불안장애가 된다. 나의 경우는 저녁 무렵에 나타나는 원인 모를 불안과 긴장 증세이다. 창 밖이 점점 어두워질 때, 시계가 6시 전후를 가리킬 때, 혹은 한창 저녁을 먹고 있는 중간에 나는 갑자기 불안감을 느끼거나 손에 땀이 고이거나 또는 아련한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증세가 심한 공황발작까지 가지는 않지만 이럴 때의 내 모습은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것이리라.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온몸에서 힘을 뺀 채로 배로 숨을 골라쉬어 보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는 약간은 애처러운 모습으로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운동과 정신 조절을 통해 예전보다는 더 나아지고 있고 또 앞으로 계속 더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다. 그래도 이런 증세의 빈도와 강도가 줄어드는 것만해도 다행스럽다.

처음 공황을 경험했을 때에는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했지만, 그게 끝나고 매일같이 고통스러운 긴장상태로 거의 열흘 동안을 지내야 했을 때 느낀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는 혹시라도 맞닥트릴지도 모를 죽음에 대한 준비였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죽어야겠지, 누구나 결국은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런데 내가 만약 곧 죽을 예정이라면, 난 지금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가족을 위해 그 전에 해놓아야 할 일은 더 없을까. 내가 떠난 자리를 더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물론 그때 당장 죽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대해 강한 두려움을 느낀 공황을 경험한 뒤의 고통스러운 기간 동안에는 내가 언제 죽어도 깨끗한 모습으로 정돈된 주변을 만든 상태여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컴퓨터 정리도 하고, 방도 치우고, 내 생활을 꼼꼼히 적어나갔고, 지금 적고 있는 이것처럼 인터넷 이메일을 이용한 일기도 적기 시작했다. 공황이 나에게 준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마음의 정리를 하고자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시각을 갖기 시작했더니 세상이 온통 달라져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선물이다. 운동을 통해 더 단단해진 근육이 생긴 것도 마찬가지다. 아직 내 선천적인 조급증과 긴장 증상이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더 차분하고 느긋한 생활을 하기 위해 계속 자각하고 노력하는 것도 보기 좋은 변화이다.

한동안 별 문제가 없던 증세들이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이 차고 심장 부분 가슴이 수시로 철렁거리며 내려앉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불안감과 초조감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니까 견디기 무척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자낙스 복용을 멈추었다. 대략 일주일쯤 되었을까. 오늘 다시 한 알 집어 삼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30분쯤 지나면 증상이 사라졌는데 오늘은 몇 시간이 지나도 계속 숨차고 가슴 울렁이는 것이 멈추지 않아서이다. 게다가 이 증세가 시작된 것이 오후 3시 경에 운동을 하는 도중에였다. 보통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10분쯤 경과하면서 가슴이 너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현상이 발생해서 중단했다. 그 이후로는 계속 그 모양이라서 어쩔 수 없이 자낙스를 먹은 것이다. 아직도 가슴이 출렁 거리긴 하지만 불안과 긴장의 심리적 증상은 충분히 완화되어 다행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약의 복용을 멈춘 뒤에 그 약발이 한동안 지속되다 이제 다시 원래의 문제있던 그 상태로 돌아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다시 약을 먹어야 하는게 아닐까. 아까는 아들내미를 테니스 레슨 장소까지 차로 태워주려고 나섰는데 가슴이 너무 뛰고 불안감이 증폭되는 바람에 큰 길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혹시나 앞으론 차 운전하는 것까지 못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아들을 다시 데려올 때는 내가 운전했지만 그래도 아내를 조수석에 태운 채였다. 내일 아침에 이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 주어야 할텐데 그땐 괜찮으려나… 한동안 혈압에만 주로 신경을 썼더니 혈압은 별 문제 없어진 것 같더니만, 이젠 다른 쪽으로 문제가 터져버린 셈이다. 역시 이놈의 병을 치유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한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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