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온 영하 16도. 이번 겨울 들어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시점이다. 캐나다에는 기온이 영하 30도 혹은 그 이하로도 내려가는 지역도 많은데 그 정도 가지고 무슨 유세를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것은 그런 곳에 못지 않다. 낮기온도 영하 10도 근처에 머무는 이런 상황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니까 무슨 동토의 왕국이라는 표현까지도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 추운 기온이 싫으냐고? 아니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 하늘도 계속 흐리고 폭설이 아닌 한, 눈발도 자주 날리는게 좋다. 내 개인에게 좋은게 아니라 내 비즈니스에 좋아서이다. 대부분의 비즈니스에는 나름대로의 성수기가 있다. 내 경우에는 11월부터 갑자기 매출이 올라가면서 2, 3월 경에 정점을 찍고 6월이 되면 손익 분기점을 건들기 시작하다가 한여름인 8월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패턴을 그린다. 지금이 막 상승곡선을 타야하는 시점인게다. 한여름에 적자를 보면서도 망가지지 않고 제대로 생존해 내려면 겨울에 충분히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거둬서 탄약을 재어놔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11월에도 그리 매출이 오르지 않았고 12월이 되어도 완만한 성장세만 보일 뿐 급격한 상승세가 없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었는데 오늘은 오랫만에 좋은 실적을 보였다. 내일은 또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만, 그래도 이게 전반적인 상승세의 전주곡이 아닐까하며 기대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가 성수기로 들어갈가 말까 멈칫거리는 이 시기에 아내는 지난 토요일에 Realtor 자격 시험의 마지막 시험을 치뤘다. 올해 초에 처음 공부를 시작하고 1차, 2차 시험을 거쳐서 이번에 3차를 본 것이다. 어차피 현재의 비즈니스가 아내의 모든 시간을 다 잡아먹고 있는게 아니라서 뭔가 다른 일도 하고 싶어하는 맘에서 시작한 것이고, Realtor 자격 취득 뒤에 바라보는 방향도 일반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의 거래를 다루지 않고 비즈니스 브로커 쪽 일을 하려는게 아내의 계획이다. 비즈니스 브로커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일반 Realtor 자격을 우선 취득한 다음에 그쪽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결과는 어찌 됐든, 참 열심히 살고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 한 달 동안 애들 식사 챙기는 일이나 라이드 하는 일, 도시락 싸는 일들을 거의 혼자 하다시피 해왔는데 이번에 시험이 끝나서 내가 좀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비즈니스의 성수기가 되고 있으니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열심히 비즈니스를 해도 내 맘대로 장사가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고객이 오고 안 오는 것은 결국은 그들의 선택이고 나는 고객이 내 서비스와 상품을 선택하도록 만들고 그게 계속되도록 해 나갈 뿐이다. 이곳 캐나다에서 장사란 것을 하면서 어렵게 느끼는 것은 고객 뿐만도 아니다. 힘들게 번 내 돈을 가져가려고 몰아부치는 다른 인간들이 더 나를 힘들게 만든다.
가장 많은 돈을 가져가는 건물주. 대부분 개인이 아니라 거대 기업이다. RioCan 이라거나, Calloway REIT 라거나.. 캐나다에서 가장 순익을 많이 남기는 업체들 목록을 보면 금융과 에너지 분야, 그리고 대형 임대 업체들이 상위권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IT 기업이나 기계 업체 따위는 겨우 가뭄에 콩나듯 보인다. 나는 Calloway 가 가지고 있는 대형 Mall 에 2 개의 매장이 있는데 정말 해도 너무 하다 싶을 때가 많다. 일반 거주용 (Residential) 임대 전문 업체들도 그 파워를 믿고 세입자들을 험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제도적으로 세입자들이 보호받는 편인데, 비즈니스 (Commercial) 임대쪽으로 가면 중소 비즈니스 세입자들은 거의 노예에 가까와 보인다. 내 경우에는 매장 Lease 를 받기 위해서 부부가 함께 개인 보증을 서야했다. 임대 계약서를 보면 자기들이 필요할 경우에는 나에게 60일 Notice 를 주고 자기들이 아무 다른 곳에나 같은 면적의 공간으로 옮기게 만들 수도 있게 되어 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건 어떻게 해서건 내 매장의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이면 나에게 월 매출 리포트를 요구해서 그 수치에 따라 기존 렌트비 이외의 추가 금액을 징수해간다는 조항도 있다. 물론 장사가 안 되어도 임대료를 낮춰주진 않는다. 3호 매장의 경우엔 아예 계약서에 아무때나 일정 기간 노티스를 주고 건물주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도 있게 적혀있다. 이런 것 외에도 참 많은 독소 조항들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해줘야 한다. 이 인간들은 자기네들 말에 따르지 않으면 임대를 안 내주고 몇달이건 그 공간을 비워놓을 자세가 항상 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일년에 몇천만불, 혹은 억불 단위로 흑자를 남긴다.
전력 공급 회사들도 거의 날강도들이다. 런던 하이드로의 경우에 매년 흑자가 2~3천만불쯤 되는데 이 회사는 100% 런던 시 소유라서 시 재정 면에서 황금알을 낳는 대접을 받는다. 이번에 매장 3개에 대해서 전기 요금 보증금을 1만 3천불 내라고 레터가 날아왔다. 최고로 많이 쓴 달의 요금에 3배를 곱해서 나온 값이다. 공기업이지만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전화와 인터넷은 Bell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여기서도 요금이 가정용의 3배쯤 된다. 기업용이라서 무슨 무슨 추가 서비스가 강제로 포함된 패키지를 가입해야 한단다. 몰래 일반으로 가입하고 싶어도 주소를 보고 무조건 그 가격을 때려 버린다. 대기업끼리의 경쟁이 별로 없는 캐나다에서는 이게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조만간 미국의 대형 통신업체인 버라이존이 들어온다고 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 댓글이 완전히 “쌤통” 일색인데 캐네디언들도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나보다.
매장 5 곳의 시설과 장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지간한 수리는 다 내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리 업체 사람을 불러야할 때도 가끔 생기는데 그 놈들도 맘에 안 든다. 변기가 막혔다고 매장 매니저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내가 바빠서 플러머를 불렀더니 변기가 역류해서 그 주위가 지저분하다고 해서 매니저가 깨끗하게 청소를 한 다음에야 수리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진짜 수리가 됐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인간이 간 뒤에도 전혀 달라진 것 없이 변기는 계속 막힌다. 그래도 수리비, 출장비는 줘야 한다. 천연개스를 사용하는 빨래 건조기 (Dryer)에 열기가 없이 찬 공기만 나와서 내가 모든 부품을 확인해 봤는데도 이상이 없었다. 혹시 개스가 공급되지 않는게 아닐까 의심도 됐지만, 개스로 하는 난방은 여전히 되고 있어서 내가 능력이 모자란가보다 여기고 가전제품 업체의 수리 테크니션을 불렀더니 Dryer 내부의 개스 버너가 고장 났다면서 새로 사는 값이나 수리비와 부품비를 합한 가격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업체에게서 새로 개스 드라이어를 구입해서 설치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보였다. 이제 그 원인이 확실하게 보여서 업체에 항의를 했더니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개스가 안 나오네요… 이젠 또 건물주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했는데 자긴 할 수 있는게 없다고 개스공급회사 (Union Gas)에 연락하라고 딴전을 부린다. 이래 저래 보름동안 찬바람으로 그 많은 빨래를 말렸는데, 내 비즈니스 특성상 엄청 많은 수건을 매일 빨고 말려야 하는데 열풍 없는 드라이어로는 직원들에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결국 오늘에서야 업체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밸브를 열었다. 이건 또 지난번에 옥상에 있는 히터를 수리한답시고 그 인간들이 올라가서 드라이어로 연결되는 개스 파이프를 닫아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비용은 청구되고 나는 고생하고 장사에도 지장을 받았음에도 돈을 내야 한다. 아무리 항의해도 통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를 계속 하고 싶은 약자의 고충이다. 이놈의 나라에선 개스니 전기니 플러밍이니 뭐니 다 라이센스가 있어야 활동할 수 있게 제도가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엉터리들이 많다. 이런 놈들을 감내하는 것도 다 비용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이넘들이 한번 방문했다 하면, 한번 손 댔다 하면 백불 단위로 돈이 나간다.
20명 내지 30명을 고용하는 내 입장에서 인건비도 정말 만만치 않다. 사람들은 대개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최저 임금이 시간당 10.25 불이라고 하면 “좋은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의 공치사와 표심 얻기를 위한 부분이 상당히 크다. 최저 임금이 올라가면 전체적인 물가가 들썩거린다. 나같은 소규모 비즈니스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생사의 갈림길에 오르고 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을 줄이고 직원들 해고하고 최대한 그들의 시간을 쥐어짤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Entry Job 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층들은 더욱 일자리 찾기가 힘들게 된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라도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게 되지 않으면서 청년 실업자들은 늘어난다. 그래서 복지 수당을 받으며 생활하는 젊은 사람도 꽤 많이 보인다. 캐나다에서 이런 저런 자동차 공장들이 철수하거나 폐쇄하고 있는데 인건비와 후생복지 비용과 기타 비용을 합해보면 미국에서 생산할 때보다도 적지 않게 돈을 더 들어야 하는데 누가 미쳤다고 아무런 댓가없이 이곳에서 자동차를 만들겠는가. 런던 인근의 Ford 공장은 2년여전에 철수했고 캐터필러 사의 기관차 공장은 몇 달 전에 문을 닫았고, 하인즈 케쳡 공장도 문 닫는다고 발표했고, 런던 시내에 있는 켈로그 시리얼 공장도 내년말까지 완전 폐쇄한다고 결정이 났다. 그래도 캐나다는 안 망한다. 엄청난 목재, 원유, 천연개스, 광물, 관광자원 팔아먹으면 되니 별 문제 없어보인다. 하지만 경기가 이렇게 바닥이면 나같은 스몰 비즈니스는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정 안되면 나도 다 떨어버리고 복지수당 받아서 생활해야 하나.. 한국에 재산 좀 갖고 있는 사람들은 별 생각 없어보이던데, 난 여기 캐나다에서 거덜나면 거지 신세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벌어야 한다. 겨울. 성수기. 이럴 때 최대한 벌 수 있는 만큼 벌어놔야 비수기인 여름에도 견딜 수 있다. 저렇게 내 갈 길을 방해하는 자들을 헤치고 전진하면서 장사를 해야한다. 캐나다에 온지 5년밖에 안 됐지만 한편으로는 캐나다의 웃기는 시스템에 익숙해져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벌써 캐나다 생활에 지쳐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갈구하지만 아직은 이곳을 뜰 형편이 안 된다. 눈 딱 감고 최소한 3년 정도는 더 일해야 한다. 아내는 10년을 바라본다고 하니 몇 년 후엔 이산 가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살기 좋은 곳도 많고 기분 좋게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도 많고 겨울이랍시고 매일 밤낮으로 영하 10도, 15도씩 내려가는 이곳에서 내가 왜 살고 있는걸까. 잘 못 걸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