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구입해서 운전을 시작한 것이 1989년이니까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되는 셈입니다. 중간에 차 없이 다닌 적도 별로 없이 거의 매일 운전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 햇수 자체가 몽땅 운전 경력이 되는거지요. 그런데 이제까지 교통 사고라고 할만한 사건이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기술적으로나 조심스러움 면에서 자신이 있을 만큼이 되었지만 그래도 첫 몇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고 다닌 적도 있었고 또 간간히 몇번의 위기 상황도 있었으니 당연히 사고는 운이 좋아서 안 났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월동안 내 앞의 차가 뒤로 밀리면서 툭~, 뒷차가 툭, 내가 주차하다가 살짝 범퍼 긁기, 주차한 차가 좀 밀리면서 그 앞의 전봇대를 턱~… 그런 일들만 일년에 한번꼴로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사고라고 할만한 사건이 생겼네요.
런던 남쪽의 세인트 토마스의 4호 매장에 들러 일을 처리하고 런던 동쪽 던다스 길에 있는 1호 매장을 향해서 하이버리 길을 타고 올라가는 길인데 그 길에서 가장 교통이 번잡한 곳이 해밀턴 길과의 교차로를 지나는 부근입니다. 신호도 없고 차선도 따로 없는 지점에서 앞차가 좌회전을 하려고 1차선에 깜박이를 켜고 서 있기에 나도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여서 거의 정지하는 상태에서 몇 초 뒤에 갑자기 내 차가 제멋대로 앞으로 급격히 전진하더군요. 그리고 몸은 차 시트에 푹 파묻히는 느낌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뒤로 1초쯤(?) 뒤에서야 “쿵”하는 소리가 났었구나라고 인지했다는 점입니다. 역시 “눈”이 “귀”보다 빨랐어요.
몇 초동안은 이게 뭔 일인가하고 어리둥절하다가 백미러로 뒤를 보니 빨간색 차가 한대 서 있는데 앞쪽이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뒷차에 받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저 차의 운전자는 괜찮을까 싶기도 했고, 그 차가 저 정도로 찌그러졌다면 내 차도… 라는 생각도 나고, 아무튼 차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반대쪽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도대체 속도를 줄이질 않네요. 원래 차사고가 나면 걱정이 되어서건, 구경을 하면서 가서래도 천천히 가게 되는게 보통인데 다들 쌩쌩 달리고 있는 바람에 그쪽에 면해 있는 내 차의 운전석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차량의 흐름이 끊어진 틈을 타고 내려서 뒷차 쪽으로 가니 그차 운전자도 내리더군요. 20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성 운전자였는데 전혀 아무런 상처도 없고, 정신적으로 맨붕이 오거나하는 표정도 아니었고 단지 난처해하는 모습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일단 안심하고 차 상태를 보았습니다. 뒷차의 상태는..
한국에서 본넷으로 부르는 Hood 아래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라디에이터 그릴이 밀려서 엔진 부분과 딱 붙어있을만큼 많이 망가졌습니다.
내 차의 상태는..
언뜻 보면 아무 이상도 없어 보이지만 뒷차의 빨간 페인트가 범퍼 전체적으로 묻어있고 또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라고 마련되어 있는 힛치를 덮어주고 있던 플라스틱 커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옆 차선에 가 있었지요. 줏어왔습니다.
차체 아랫쪽을 살펴보니 스페어 타이어에도 빨간 페인트가…
다른 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다친 부분이 없어요. 뒷차가 내차를 받았을 때, 단단한 강철 덩어리인 힛치를 받으면서 후드가 찌그러지고 앞부분이 낮은 차였기 때문에 바로 내 차의 뒷범퍼를 받으면서 차 아랫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간가죠. 그런데 그러면서 차 아랫부분의 다른 장치들을 건드릴 수도 있었지만 스페어 타이어가 그걸 막아준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에 한개씩 나와있는 머플러도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이런게 부서지면 비용은 상대차의 보험으로 커버되겠지만, 차량 가치 하락과 시간 낭비, 정신적 피로 등의 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한 것…
“내 잘못도 아닌데 사고가 난 것은 운이 약간 나빴던 것이고,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은 운이 아주 좋았다!”
또 운 좋았던 점 – 따로 경찰에 전화를 하진 않았는데 마침 지나가던 경찰차가 상황을 보고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차를 옆으로 대라면서 다른 차들을 막아줬습니다. 제 차는 전혀 문제 없이 이동. 뒷차는 시동을 걸려고 했으나 엄청난 굉음 발생.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이동하고 사망. 그리고 조금 뒤에 견인차가 왔고, 뒷차 여성의 어머니가 와서 다들 PRC (Police Reporting Centre) 로 가서 보고서 쓰고 귀가 했습니다. 한번 더 운 좋았던 점은 PRC 가 5 분 이내 거리라서 시간 절약도 됐고, 가서도 별로 기다리지 않고 처리가 되었다는 점… 그런데 PRC 사무실 내부에 사고를 냈거나 당한 사람들이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상담하고 있으면서도 다들 편한 표정이더군요. 그냥 은행 가서 차례 기다리거나 하는 것처럼… 그렇죠. 사고난건 사고난거고 흥분해서 떠들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아래 사진은 처음 써보는 사고 리포트. 저도 사고낸 여성과 그 엄마랑 이런 얘기 저런 수다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액땜한 셈 치면 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어차피 한번 일어났을 사고면 이렇게 가볍게 사람 다치지 않고 일어나서 다행이고 이번에 일어났으니 한동안 사고 안 날꺼다… 라는 식으로 설명해 줬더니 그 엄마가 재미있는 얘기라며 좋아하더군요. 한국의 Proverb 라고 말해줬습니다.
차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그래도 한번 검사는 받아볼 생각입니다. 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오늘 일어나고 보니 어깨가 아프네요. 남들은 이렇게 받히고 나면 뒷목이 아프니 허리가 아프니 하던데.. 잠 잘때 자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운 좋은 사고 경험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