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로 이주한 시점이 그래도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든 시점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10년쯤 살다보니 어느새 누구 말처럼, 태어나서 지금까지 반세기를 넘게 살고 있구나를 실감하는 시점이 되어버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단지 위로하려는 말이거나, 멍청해서 하는 말이거나 단지 물건을 팔려고 하는 말임을 깨닫는 것이… 나이는 숫자일 뿐만 아니라 몸상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됨을 깨닫게됨이다. 그래프로 그리자면 1차 함수가 아니라 2차 함수의 그래프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라…
얼굴의 주름이 늘고, 머리도 더 빠지고, 몸도 유연성을 잃고, 수면의 질도 낮아지고, 기억력도 급격히 감퇴되고, 이젠 휴대폰 글자도 잘 안 보여서 글자 폰트를 키워서 보거나 그걸 든 손을 쭉 뻗어서 멀리 봐야할 정도… 이런 것들은 좀 불편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겠는데, 입 안에서 어금니들이 일제히 나이 티를 내느라고 금이 가거나 깨지거나 하기 시작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특히나 가진 돈이 많거나, 일 안 해도 돈 들어올 곳이 있거나, 든든한 보험을 제공해 주는 좋은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는 이중으로 힘들어진다. 특히나 캐나다에서 말이다.
입 안 어금니들 상태를 보자면.. 뿌리에 크랙이 생겨서 뽑아버리고 빈자리만 남아있는 넘, 크랙이 생겼지만 아직 견딜만해서 흔들거리며 지내고 있는 넘, 신경치료를 한 뒤에 필링만 한 다음에 크라운을 씌우지 않고 2년째 대기중인 넘들이 있다. 그리고 일주일 전까지 ‘이’상한 넘이 하나 더 있었는데, 1/3 정도 수직 방향으로 깨져나가면서 신경이 드러났지만 뽑아버리라는 치과의 권고를 무시한 채, 그냥저냥 2년쯤 버티고 있던 넘이었다. 왜 그냥 뒀냐하면, (만약)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고도의 기술과 첨단 장비와 저렴한 비용을 자랑한다는(!) 한국의 치과들에서는 이걸 뽑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비용과 상실감과 함께 치과공포증이 더 큰 이유였겠지만… 어쨌든 한국에 갈 여유는 없으니 그 상태로 2년 넘게 생존하고 있었는데, 최근까지도 이넘은 식사때에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2주쯤 전부터는 24시간 내내 아프기 시작했다. 치과에 예약을 하고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또 뽑아버리란다. 마침 곧바로 발치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비어서 바로 발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어차피 계속 이 고통을 안고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Let’s do it.
캐나다에서 처음 이를 뽑았을 때, 치과의사가 거의 온몸으로 힘을 주면서 도구로 이를 무너뜨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Rough 한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저 치과의사가 남자라서, 젊어서, 또는 내 어금니의 저항이 심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치과에서였지만 가벼워보이는 몸집의 여성 치과의사가 발치를 하면서도 똑같이 강하게 어금니를 공략했다. 내 이를 살피면서 좀 Interesting 한 경우라고 얘기를 했고 나중에 뽑은 뒤에도 워낙 단단히 붙어있어서 뽑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뼈가 단단한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강하게 붙어있는 내 몸의 일부를 뽑아야했다는 사실이 좀 서글펐다.
지난번 이를 뽑았을 때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이를 뽑더라고 아내에게 얘기해줬고, 아내가 한국에서 치과의사였던 분에게 그 설명을 전했더니 한국에서는 요즘에는 그런 식으로 뽑지 않고 훨씬 부드러운 방법을 쓴다고 했단다. 그건 또 무슨 방법일까. 또 다른 지인에게 내 쪼개진 어금니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그와 거의 비슷한 경우가 생겨서 한국에 가서 신경치료를 한 뒤에 쪼개진 조각을 접착한 뒤에 크라운을 씌워왔다고 했다. 사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약간의 희망을 가졌지만, 여기서는 그냥 뽑으라는 권고였다. 사실, 뽑지 않는 옵션은 있었다. 이런 식으로 쪼개진 어금니를 전문으로 신경치료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에게 가서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와서 크라운을 씌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번에 뽑은 이도 혹시나하는 마음에서 스페셜리스트라는 치과의에게 신경치료를 받았지만, 치료가 다 끝난 뒤에 하는 말이 “뿌리에 크랙이 갔기 때문에 뽑아야한다”였다. 그래서 다시 1차 치과로 돌아가서 발치했다. 그 당시의 총 비용은.. 첫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검사를 받은 비용이 약 3백불. 스페셜리스트에게서 (쓸데없이) 신경치료 받은 것이 8백불, 나중에 원래의 치과로 가서 발치한 비용이 약 4백불. 스페셜리스트에게 치료를 받기 전엔 동의서에 싸인해야 했다. “신경치료는 성공률이 60% 정도이라서 당신의 치료가 성공한다고 보장 못한다”라는 항목이 동의서 맨 위에 있었다. 치료는 실패해도 돈은 전액 다 내야 한다.
이번에도 4백불 정도 비용이 들었다. 10년도 더 전의 기억으로 한국의 국민의료보험에는 치과치료도 포함되어 있던 것 같은데 캐나다에서는 아니다. 이곳 온타리오의 OHIP 에는 치과는 커버되지 않는다. 치과는 물론 마사지 같은 것까지 다 커버해준다는 직장 의료보험이 참 부럽긴 한데, 나 자신이나 아내 모두 자영업자라서 그냥 내 주머니에서 내야한다. 사설보험들이 있고 몇년전에 가입을 고려해 보긴 하지만, 비용적인 면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어보이진 않아서 그냥 내돈 내고 말지 싶었다. 치과가 아닌 일반 의료 서비스는 디덕터블 (자기부담금)을 5백불이건 천불이건 내고 그 이상은 백만불이나 그 이상 한도내에서 모두 보험에서 지불하지만, 치과 서비스는 반대로 일정 액수 한도까지만 (가령 1천불, 2천불 등) 보험회사에서 지불해주고 그 이상은 다시 개인이 돈을 내야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대충 찾아보기만 했기 때문에 또 무슨 프로그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치과 보험 없는 상태로 10년을 살아왔다. 이젠 다시 한번 찾아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어금니 임플랜트 비용을 치과에 물어봤더니 전체 비용이 4천불 정도 나올거라고 한다. 물론 그보다 더 낮을 수도 있고 높을 수도 있단다. 발치하는 것도 5백불 전후가 보통이지만 좀 어려운 경우엔 1천불을 넘고 심지어는 2천불도 넘을 수도 있다고 하고, 신경치료는 그보다 더 비쌀 수 있단다. 크라운 역시 2천불 내지 3천불… 그런데 Gold 는 옵션이 아니란다. 마누라도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으니 뭔가 다시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를 갖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러면 캐나다가 아닌 한국이나 태국으로 의료관광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