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비현실같은 현실

By | 2020-04-03

매장 두곳 모두 닫은지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매출 제로. 그래고 전기료니 뭐니 기본 비용은 나가고 있구요. 가장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후덜덜스러운 매장 렌트 비용입니다. 어차피 매장 닫기 전부터 거의 수입이 없었으니 당연히 렌트낼 돈이 부족했지요. 두곳 건물주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간곡한 이메일을 보냈더니 한곳에서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 내용인즉,

“우리도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서 투자한 회사인데 그 사람들 모두 각자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고 다들 나름대로 렌트비 내는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도 힘들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냥 배째라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매장의 건물주는 대형 부동산 투자사인데, 당연하다라고나 할까.. 아무런 답장이 없습니다. 어쨌든 최대한 낼 돈은 내야겠지만 우선 정부에서 발표한 4만불 빌려주는 긴급 정책이 시작되면 그걸 받아서 임시방편으로나마 해결할 생각입니다. 비즈니스를 7년째 하면서 동시에 최대 5 개 매장까지 운영한 적도 있지만 이렇게 렌트를 제때에 못내고 있는건 처음이네요.

상품 공급업체에서 적지않은 돈을 4월 초에 돌려받기로 되어 있었기에 그걸로 렌트 내는걸 해결하려고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역시나 답장이 없습니다. 그것도 사무실 폐쇄했다고 진작에 연락은 받았었지만 직원들이 재택근무하는건 아닌가봅니다. 아니면.. 돈 나갈 일이라고 거기도 배째라 모드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구입했던 임대용 주택은 최종 마무리는 해야합니다. 클로징 날짜가 되어 Bank Draft 수표를 만들러 TD Bank 로 향했습니다. 지난번 은행에 갔을 때보다 더 삼엄한 대비책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은행 내부에는 줄서서 기다리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은행 밖에서 2미터 이상씩 간격을 띄우고 줄을 섰습니다. 캐나다 은행 매장에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경비원이 안내를 합니다. 은행 매장 안에서 일을 마치고 나간 숫자만큼 새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 60 세 이상의 고객들은 줄 뒤에 안 서고 문 바로 앞에 가면 됩니다.

중국마트 Food Island 에 들렀더니 입장할 때 줄은 안 서지만 김장할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비닐장갑을 잔뜩 쌓아놓고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끼고 들어가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시장 보고 나오면서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구요. 이 곳에서 2주 전까지만 해도 중국학생들도 마스크 착용을 거의 안 하고 있었지만 이젠 반대로 중국학생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손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남미 계통이건 백인들이건 최소한 이 중국마트 안에선 그렇게 하고 있었구요.. 어느 히스패닉 사람들은 중국마트 출입구를 나서자마자 바로 마스크를 벗고 술을 깊이 몰아쉬더군요.

전날에는 코스트코를 지나면서 건물 밖에 줄서있는 사람들이 많은걸 보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줄이 없었습니다. 바로 차를 돌려 들어갔지요. 한산한 주차장, 공간적으로 여유있는 매장의 모습… 하지만 마치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이 돈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었을 뿐일까요. 많은 백인들이 마스크를 쓴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비닐 장갑을 끼고 있었고요. 체크아웃 카운터에서도 직원들과 고객들 사이에 아크릴 칸막이가 마련되어 있었고 멤버쉽 카드를 주고받지 않고 바로 스캔만 하더군요. 쇼핑을 마치고 건물밖으로 나갈 때에도 직원이 영수증 검사하는 단계가 없어졌던데 생각해 보니 카운터에서 계산할 때 그걸 함께 한 것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생활 방식의 많은게 달라졌습니다.

비용절감을 위해 서비스 한가지를 최소하고 그 장비를 업체에 우편으로 반납하기 위해 UPS Store 를 방문했습니다. 박스에 물품을 넣어 포장하고 송장을 박스에 붙이는 등의 일을 모두 고객이 직접하게 되어있더군요. 최종적으로 송부할 박스를 건네주는 것도 UPS 스토어의 직원이 받아서 놓지 않고 고객이 직접 지정된 곳에 두어야 합니다. 나중에 UPS 픽업 직원이 와서 그걸 트럭에 실어가겠죠. 안전을 위해 UPS 스토어의 직원은 전혀 고객이 가지고 들어온 물품을 터치하지 않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혹은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내가 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 리얼터 업무는 Essential 한 업무에 포함이 되어 있어서 계속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 작년 12월과 올해 1, 2월에 계약이 성사된 딜이 여러 건 있는데 그것들은 마무리 지어야합니다. 이미 집이 팔린 고객들, 혹은 이미 집을 구매한 고객들을 위해서, 좋건 싫건 어쩔수 없이라도 일을 처리해야하는 것이지요. 쇼잉은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한꺼번에 바이어쪽 가족이 모두 쇼잉에 출동하는 것은 절대 금지. 한사람 혹은 최대 두 사람까지만 집을 구경하러 올 수 있게 한답니다. 집사람은 쇼잉시에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고객들은 문고리건 뭐건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데 한인 고객들은 이미 똑같이 완전무장하고 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서 별 문제가 없다네요.

집의 차 3 대 모두에 보호장비를 갖췄습니다. 비닐 장감과 Hand Sanitizer. 바깥에서 일을 보고 차를 타면 반드시 손 세정제로 열심히 손을 소독해주는게 습관이 되어버리더군요. 아직 마스크는 안 씁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없어서이기도 하고.. 캐나다에선 N95 규격, 한국에서는 KF94 규격이 동급이라네요. 수십년전 초등학교 시절에 마스크 써 본 이후로는 전혀 다시 써 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잘 손이 안 가기도 하고, 최대한 Face to Face 대인 접촉을 안 하는게 최상이고 마스크 자체가 세균 콜렉터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착용 사후 취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맞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집 밖에 나가야 하는 이유는 멍멍이 산책 때문인데 오늘 걷다보니 하늘이 파랗더군요. 완연한 봄 날씨에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잠깐동안이나마 여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실상은 온 세상이 전쟁터 분위기인데 말이지요. 문득 이런 현실이 너무나도 비현실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영화속 일처럼요. 좀 쓴웃음이 나긴 하네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머리속에 떠올리는 말이 있습니다. Everything eventually does work out.. 최대한 이 현실을 통해 나 자신을 리셋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정상적인 시절에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하고자 합니다. 고난을 기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