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차갑고 엔진은 뜨겁고

By | 2022-01-01

며칠 전 깜깜한 밤 시간에 차를 몰고 일보러 가는데 차 히터가 찬 공기를 불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2월 겨울에 웬 찬공기? 에어컨으로 셋팅되어있나?”

대략 살펴보지만 다이얼 셋팅은 모든게 정상으로 되어 있어서 거 참 이상하다 싶은데 계속 달려도 따듯한 바람이 나오지 않더군요. 에어컨이 고장나는 경우는 봤어도 히터가 고장나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인데 말이죠. 차가 달리면 엔진은 뜨거워지고 그걸 식혀주는 냉각수를 이용해서 따듯한 바람을 만드니까 공기를 내보내주는 블로워가 이렇게 동작하고 있는한 찬 바람이 나와선 안되는 일입니다. 일단은 목적지로 향해 차를 몰면서 생각해 봅니다.

“혹시 온도 센서가 고장나서 에어컨이 가동되는걸까? 그래서 에어컨이 돌아가는걸까? 그도 아니면 …”

가까운 거리를 다녀오는 길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에 운전은 다 끝나버리고 집에 들어가면서 차의 이상동작에 대한 생각도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내일은 다시 괜찮아지겠지..

다시 아침이 되었고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또 찬바람이 불어나옵니다. 어젯밤에도 그랬지라고 기억하는 순간 경고음이 들려오네요.

“삐~익!”

이건 또 뭔가 싶어 계기판을 봤더니. 전에 가끔 보곤 했던, 타이어 공기압이 모자라다던가 혹은 워셔액 보충이 필요하다던가하는 그런 주황색 표시가 아닌, 새빨간 색의 사인이 한개 떠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온도계 바늘이 꼭대기에 치닫고 있었고.. 마치 아래 그림처럼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초 비상 사태가 벌어진겁니다. 실제 경험해 보지 못하고 말로만 듣던 오버히팅. 자칫하면 엔진이 망가지거나 불붙을 수도 있는… 예전에 도로 한복판에서 엔진쪽에서 무자비하게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차량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머리를 때립니다. 향하던 목적지는 제껴버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상업시설 주차장에 들어가서 차를 세웁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조심스레 후드를 열었는데 이상하게 열기가 안 느껴집니다. 라디에이터도 엔진도 그 근처도 과열된 상황이 아니네요. 달리던 차의 라이에이터 캡은 절대 열면 안되는걸 알기 때문에 캡은 그대로 두고 밖에서 만져봤지만 오히려 시원합니다. 근처에 있는 냉각수 보조 탱크를 열어보니 완전히 비어있습니다. 냉각수가 모자른걸까 싶어서 우선 차 안에 있던 생수 두 병을 모두 냉각수 보조 탱크에 넣고 충분히 식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다행히 런던 시내를 막 벗어나기 직전이라 몇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캐네디언 타이어 매장이 있는걸 알고 있어서 거기로 향합니다.

캐네디언 타이어의 자동차 용품 진열대에서 냉각수를 찾는데 모두 물과 반반씩 희석시켜야 하는 것 밖에 없네요. 직원에게 물어서 Pre-Mixed Coolant 를 삽니다. 여유있게 2 통을 산 뒤에 주차장에 있는 내 차의 냉각수 보조 탱크를 가득 채워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제 과열되었다는 빨간 경고등은 들어오지 않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차 엔진 공간으로부터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다시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그 냄새를 맡아보니 연기는 아니고 스팀이었습니다. 냉각수가 온도가 높아지면서 증발하는 김나는 상황…

이건 차의 쿨링 시스템 어딘가에서 냉각수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과연 어디인지 살펴봐도 엔진과 라디에이터 주변이 스팀 때문에 이미 젖어있어서 흘러나오는 곳이 잘 안 보입니다. 차가 달리면서 온도와 압력이 생겨야 그 상황이 만들어질 듯한데 알 수가 없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카센터에 연락해서 라디에티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며 언제 수리 예약을 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내일 아침 8시에 가능하다더군요.

다음날 아침 차를 맡긴 뒤에 잠시 기다렸더니 역시 라디에이터에 구멍이 새서 거기로 냉각수가 새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의 선택은 라디에이터 교환이 당연하겠지만 어떤 분은 때워쓰면 된다고도 하시네요.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때워쓰는 것도 드물지 않아보이지만 그게 완벽하게 문제 해결을 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과연 그 부분만의 문제인지, 때운 것이 반영구적인 수리를 되는건지, 앞으로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어느 낮선 곳에서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면 값싼 방법은 사용하고 싶진 않아집니다. 그래서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합니다. 부품+인건비+세금 합하면 또 천불 가까운 돈이 되네요.

지난 8년 반 동안 20만킬로미터를 달리면서 거의 고장나지 않았던 이 차도 이제 여기저기 낡아가기 시작하나 봅니다. 작년에 한번 수리할 일이 생기더니 2021년에는 두번 카센터 신세를 졌습니다. 차를 새로 구입할게 아니라면 앞으론 종종 잔고장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10년은 채워볼 생각입니다. 키우는 강아지도 아프더니 차도 여기저기 아프고 내몸도 나이 들면서 예전같지가 않으니 역시 세월엔 장사 없다는 말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