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바라보며, 두 번째 이야기

By | 2001-03-18

원래 이번 주의 본 컬럼 주제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 출근 길에 차 안에서 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좌담 내용 때문에 지난 주에 이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대해 조금 더 쓰기로 했다.

라디오의 아나운서는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따른 피해액을 물었고 자칭 전문가라는 타이틀의 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무지함에 대한 자랑은 이것만으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이어서 부연 설명을 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는 연 5조원의 소프트웨어 매출을 추가로 올릴 수 있게 돼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으로 유도되면서 세계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부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5조원이라… 경제학과 교수님의 말이므로 숫자 계산은 정확하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의 말처럼 현재 불법복제해서 쓰는 소프트웨어를 모두 정품으로 구매하게 된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가게 될까? 결과적으로 매년 그 5 조원의 대부분을 외국에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반면에 이번의 불법복제 단속으로 인해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얻는 이익은 별로 크지 않다. 고작해야 아래아 한글과 백신 프로그램이 조금 더 팔리는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사무용 프로그램의 대세는 한글과컴퓨터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쪽으로 기운지 오래다.

또한 CAD와 그래픽 프로그램도 국산 제품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온갖 유틸리티마저도 돈내고 사는 것들은 대부분 외국산인 실정에서 어찌 이번 단속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한편, 이런 식으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규모를 추산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5조원이라는 돈으로 표현되든, 아니면 불법복제율 50% 혹은 60%라는 비율로 표현되든 상당히 과장돼 있다.

소프트웨어는 외형으로 보면 무형의 지적 소유권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은 그 가격만큼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CD-ROM에 복사를 했고 사용을 하지 않아도 그것은 불법복제로 규정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고는 가치가 없는 것인데도 그런 규정을 적용한다면 지나치게 소프트웨어 업체 쪽에만 유리한 것이 된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사해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곤 한다. 그들은 단지 그 소프트웨어가 어떤 것인지를 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기능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그 소프트웨어가 100만원짜리라고 할 때 그는 단지 만원 어치만 사용해봤을 따름이다. 이런 경우 흔히 있는 데모 버전만 써도 충분한데, 힘있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무조건 ‘All or Nothing’의 원칙이 존재한다.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사용한다. 수십 만원을 들여 구입한 정품이지만 항상 느끼는 것은, 난 그 수십 만원 어치의 가치를 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워드로 작성하고 있지만 글자만 입력하는 수준이고, 그 이외의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이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수백 만원짜리 가치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히 불공평하다. 그것은 워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포함된 엑셀과 파워포인트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워드에 있어서 아래아 한글과의 경쟁을 위해 만원짜리도 내놓았지만, 다른 오피스 프로그램인 경우에는 전혀 그런 경쟁도 없고, 따라서 그처럼 낮은 가격도 없다. 왜 내가 필요한 만큼의 기능만 가지고 가격도 그에 맞춘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없는 것일까.

아무튼 정식으로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사용해야 하는 것은 지켜져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구입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거의 10년 가까이 윈도우 3.1과 95, 그리고 98 버전을 계속 사용해 오다가 지금은 윈도우2000을 쓰고 있는데, 그동안 불안정한 운영체제로 인해 시스템이 다운되고 소프트웨어와의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작업했던 내용을 잃어버리기도 했었다. 이럴 경우 내가 돈을 주고 산 소프트웨어의 불안정성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운영체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업체에서 구입한 응용 소프트웨어가 불안정해 그렇다고 한다면 아전인수격인 해석이다.

최근에 아웃룩 익스프레스와 안철수연구소의 V3를 함께 사용했던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메일이 모두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한 경우가 속출했다. 그 원인은 밝혀졌고, 나중에 안컴퓨터 측에서 패치 파일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 소비자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 것인가?

이 두 회사가 모두 돈 받고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이므로 소비자들도 불법복제 단속을 당하는 정도로 이 회사들을 문책해야 하지 않을까?

소프트웨어에는 항상 버그가 존재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 버그들을 잡아내지 않는다면 당연히 해당 제작 업체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액이 엄청나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불량 소프트웨어와 버그, 그리고 업체들의 불성실 및 낮은 기술 수준 때문에 제 돈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발생한 심리적 불안, 시간 낭비, 경제적인 손실 등을 돈으로 환산해도 역시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혀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기능까지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어쩔 수 없이 구입해 발생되는 금전적인 손실도 상당할 것이다. 시장을 볼 때 먹거리는 먹을 만큼만 사고 싶다. 옷이나 자동차,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등의 경우에 하자가 발생할 때에는 그에 대해 보상 등의 조치가 있다.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사용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소비자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정품으로 구입하고, 그와 함께 업체에 대해서는 돈 받고 판 물건에 대한 책임도 묻고 필요한 만큼만 파는 방안도 요구하자는 것이다. 이건 정말 공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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