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9세의 탐 왓슨 (Tom Watson)이 브리티시 오픈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세상의 모든 골프팬들을 매료시켰고 스튜어트 싱크와 상대한 연장전에서도 아마도 싱크가 이기라고 응원한 사람은 싱크 그 자신 및 가족 친구들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탐 왓슨은 골프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왔습니다. 브리티스 오픈 최종 결과를 보도한 각종 미디어들에서도 스튜어트 싱크보다 오히려 탐 왓슨의 사진과 기사를 톱에 올려놓는 것까지 볼 수 있었으니, 스튜어트 싱크로서는 좀 섭섭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상금과 명예와 경력은 계속 남을테니까 섭섭해할 필요까진 없겠죠.
저는 경기 결과 뿐 아니라 선수들의 배경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탐 왓슨에 관한 다른 점들을 알아봤습니다. 가령, 그가 환갑의 나이에 실제 정식 경기에서 드라이버로 날리는 거리는 어느 정도 될 것인가, 혹은 어떤 클럽을 쓰는가 등과 같은 분석이죠. 일단 왓슨 아저씨가 사용한 드라이버는 아담스 골프 (Adams Golf) 사의 스피드 라인 (Speedline) 모델로서 로프트 각은 10.5 도였습니다. 한국 골프들은 그다지 많이 사용하지 않는 회사인 점도 그렇지만, 그 로프트 각도가 프로 골프로서는 꽤 크다고 할만한 10.5 도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골프 좀 친다 하는 아마추어들은 무리해서라도 9.5도 정도는 써야한다, 심지어는 8.5도는 되어야 폼이 난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어서입니다. 마치 드라이빙 거리 및 실력은 드라이버 클럽헤드의 로프트 각도에 반비례한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는 점이죠.
하지만 드라이버의 로프트 각도는 그걸 사용하는 사람에 철저히 맞춰져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람이 드라이버를 어떤 그립으로 잡고, 밀어치는지 올려치는지, 원플레인 스윙을 하는지 투플레인 스윙을 하는지, 스윙 경향이 드로우 스타일인지 페이드 스타일인지, 최종 임팩트 시의 헤드 속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의 수많은 개인적인 스윙 특성에 따라서 드라이버의 섀프트 길이, 플렉스, 로프트, 킥포인트 등과 함께 헤드의 여러가지 성질이 매칭되는 것입니다. 올모스트 환갑의 탐 왓슨 아저씨가 이 10.5도짜리 아담스 드라이버로 날리는 공식 비거리는 얼마일까요? PGA 시니어 대회인 챔피온스 투어에서의 공식 평균 드라이빙 비거리는 287.1 야드로 나와있습니다. 아주 길어 보이지는 않지만 시니어 투어가 아닌 PGA 정식 투어 골퍼들의 평균 드라이빙 거리가 286.5 야드인 것을 보면 20, 30 대가 주축인 PGA 투어 플레이어들과 비교해봐도 오히려 평균수준을 쪼금 넘을 정도는 된다는 것이죠. 드라이빙 정확도 또한 71.43% 이므로 평균보다 높은 편입니다. 게다가 탐 아저씨의 스윙 모습을 보면 정말로 한국의 50대 아저씨들이 하는 것처럼 약간은 엉거주춤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하긴 그보다 심한 것이 요즘 물이 오른 49세의 케니 페리 스윙폼이긴 하지만 말이죠.
또 재미있는 점은 결승 연장전에서 탐 왓슨을 물리친 스튜어트 싱크의 드라이버가 원래의 제품 스펙은 나이키 스모2 (Nike Sumo2) 9.5도짜리기인 한데 약간 구부려서 거의 10도짜리 드라이버로 개조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으로 날리는 드라이빙 거리는 PGA 투어 평균 291.3 야드입니다. 이런걸로 볼 때 역시 드라이버의 로프트 각도는 실력이나 드라이빙 거리와 큰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결국 개인적인 스윙 습관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게 맞다고 봐야하는 것이죠. 참고로 탐 왓슨 아저씨의 몸매는 키 175 센티미터에 체중 78 킬로그램의 아주 평범한 스펙입니다. 골프의 전설 벤 호건과 비슷한 신체조건이군요.
지난주에 US LPGA 오픈에서 우승한 지은희 선수의 드라이버 로프트 각이 7.5도인 것을 두고 어느 신문에서는 좀 과하게 다룬 감이 있었는데, 이건 순수히 여러 클럽 가운데 한개의 스펙의 어느 숫자로만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기사꺼리가 워낙 없고 한국의 골퍼들이 드라이버 로프트각에 대한 관심도가 좀 높다고 생각해서 낸 기사인 것 같은데 그 7.5도 드라이버를 다른 프로 및 아마 골퍼들 몇명에게 들려주고 공을 치게 한 뒤에 결과가 엉망이었다, 이런 클럽을 사용하는 지은희는 역시 특별하다라는 식의 내용이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지은희의 비거리가 많이 긴 것도 아닙니다. 평균 244 야드 정도라고 나와있으니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드라이빙 정확도는 LPGA 투어 기록에서 78.6% 로 8위로 상위권입니다. 지은희의 드라이빙은 비거리가 아닌 정확도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며 결국 스윙 스타일에 따른 드라이버 선택의 결과가 그 드라이버였다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미국 골프 다이제스트 잡지에서 다뤘던 기사를 소개해봅니다. 9, 11, 14, 16 도의 로프트를 가진 드라이버들을 가지고 시속 65 마일에서 115 마일까지의 서로 다른 헤드 속도로 바꿔가며 볼을 쳐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답니다.
- 시속 65 마일 (시속 104 Km)에서는 로프트가 16도의 비거리가 가장 길었음.
- 시속 75 마일 (시속 120 Km) 에서는 로프트가 16도의 비거리가 가장 길었음.
- 시속 85 마일 (시속 136 Km)에서는 로프트가 11도의 비거리가 가장 길었음. (9도짜리가 최소 비거리)
- 시속 95 마일 (시속 152 Km)에서는 11도짜리가 최대 비거리 (14도짜리가 두번째임)
- 시속 105 마일 (시속 168 Km) 에서는 11도짜리가 최대 비거리
- 시속 115 마일 (시속 185 Km) 에서는 11도짜리가 최대 비거리
물론 이것 자체도 각 개인의 스윙 패턴에 의해 달라지겠지만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드라이버의 로프트 각도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뭏든 드라이버의 선택은 현실적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사용하는 드라이버의 로프트 각도는 과연 얼마일지.. 참, 제 드라이버는 420cc, 11.5도, S-Flex, 미국스펙입니다. 그리고 탐 아저씨가 18도 및 20도 등 2개의 하이브리드를 사용한 것처럼 저도 하이브리드를 2개 씁니다. 18도 그리고 24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