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울 송파구에 볼 일이 있어 인천에서부터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달려가다가 너무도 교통이 잘 빠지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양평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렸다. 외곽 순환도로의 송파 출구에서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중부고속도로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바로 팔당 쪽으로 빠지고 팔당대교를 건너면 바로 양평가는 길과 만난다. 어차피 평일인지라, 양수대교를 건너 용담대교가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도로는 한산했고 날씨까지 오랫만에 햇볕이 눈부실 정도로 맑은 날이었다. 이 정도라면 비록 혼자일지라도 꼭 드라이브를 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조건이었다.
팔당에서 국도를 타고 양평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5 개의 터널을 차례로 지나야 한다. 그 뒤에 바로 양수대교를 타게 되는데, 마지막 터널을 지날 때까지는 꽤 오랫만에 지나는 길이라선지 좀 낮선 느낌도 들었지만 그 터널을 지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두물머리, 그러니까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면서 만드는 넓은 강폭과 그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지는 경치, 환한 햇볕 아래 드러나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그만 콧등이 시큰해졌다. 내 머리속의 저장되어 있는 즐거웠거나 아름다웠던 기억과 맞아 떨어지는 어떤 자극이 있을 때의 내 생리현상이 바로 그 눈물샘의 자극이다.
양평에서 살던 4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회사에 출퇴근하거나 집을 떠나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 갈 때, 그 터널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경계가 되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그 터널들 가운데 마지막 출구를 나서면서는 비로소 집이 가까이 있구나라고 실감하곤 했다. 회사 생활을 하지 않았던 약 2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는 주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 낮에 쇼핑을 가거나 다른 집을 방문한 뒤에 나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게 낮시간이었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이번에 봤던 것같은 햇볕 부서지는 아름다운 두물머리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당시에 양평 집으로 가는 길에 관한 대표적인 기억은 바로 이번에 내 눈에 비쳤던 그 모습이었고 그런 완벽한 매칭이 되었을 때는 항상 눈물샘이 자극된다. 물론 엉엉 울지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지도 않지만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자신이 심리적으로 울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린다. 외적으로는 전혀 울 것 같이 생기지도 않고 실제로도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지만 내면 속에서는 그렇게 잘 우는 사람이 나다.
사실, 그렇게라도 속으로 눈물 흘렸던 기억들이 적지 않다. 가장 감격적인 것은 역시 두 아이들이 각각 태어나던 때였다. 이 녀석들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잠시나마 내 품에 안겼을 때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오락가락했지만 그때 콧등이 무척이나 시큰했었다. 그런데 이런 내 가족의 역사적인 순간들이 아니라 정말 별 이유가 없어보이는데도 눈물샘이 자극받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하나는 작은 길을 운전해가는데 길 양쪽으론 무성한 개나리가 샛노랗게 끝없이 늘어서 있었을 때이다. 그때도 해는 내 머리 위에서 쨍쨍 비치고 있었다. 또 다른 기억들에서도 이렇게 태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흐린날, 비오는 날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지 않지만 그런 때는 좀 우울하고 무겁게 착 가라앉은 그런 기분이었고, 이처럼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공중에 붕 뜬듯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내가 혼자였다는 사실이다. 햇볕, 도로, 그리고 혼자만의 순간.. 이런 것이 조합을 이루면서 나의 내면의 감성을 마구 자극해대는 그 ‘완벽한 순간’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 조합이 왜 나의 감성을 그리도 강하게 자극하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릴 때는 좀 색다른 느낌도 있었는데, 선사시대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햇볕과 함께 조합되는 상상 속의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눈물이 흐를 뻔 한 적도 있었다. 어떤 감성적인 충격파와 함께 마치 내가 아주 오래전의 모습, 가령 전생의 모습을 기억해 내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했었다. 나는 구태여 그런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겠다는 욕심은 없다. 나는 그런 순간 순간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하면서 어떤 쾌감까지도 느끼곤 하니까 그냥 즐겨도 될만한 일이다. 물론 알게 되면 좋은 일일수도 있지만 결과가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 그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이런 나도 꼭 한번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것도 엉엉 소리를 내며, 꺼이꺼이 목을 놓아 10분 넘게 하염없이 방바닥을 눈물로 적셨던 것이다. 3년전쯤에 가족들을 모두 태국에 보내놓고 혼자 넓은 아파트에서 지내길 몇달 때, 어느날 아무런 외부 자극도 없이 갑자기 내 울음의 방어막이 깨졌는지 그렇게 속절없이 울어버렸다. 도대체 이유도 모르겠고 울음을 그칠래야 그칠 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그것도 혼자서… 그건 어쩌면 몸과 마음이 심한 피로에 쌓이고 고독과 불안감이 감정의 벽을 잠시 무너뜨리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까지 내면에 쌓였던 눈물샘이 더 이상 못참고 그 안의 모든 것을 모두 다 쏟아붓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뒤로 현재까지는 그와 비슷한 일은 없었다. 단지 가끔씩 며칠전의 그 양평에서 느꼈던 콧등이 시큰해지는 순간만 만날 뿐이다.
어쩌면 내 머리속, 혹은 가슴 속의 그 남자가 또 다시 울게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날이 온다면 이번엔 혼자 울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울어보고 싶다. 그리고 참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소리내어 울어보련다. 우는 이유는 여전히 나 자신도 모르겠지만 정말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내 속의 그 남자가 낮가림을 하지 않게된다면,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걸 품고 있는 나도 바깥세상과의 사이에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언제가 될지, 그날이 정말 올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울게 될 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