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아침에 OREA 홈페이지에 들어가더니 리얼터 시험 2차 점수 나왔다고 하더군요. 결과는 86점. 커트라인 75점을 훌쩍 넘었으니 합격이긴 하지만 자기 예상은 90점이었는데 어디서 틀린건지 모르겠다고 투덜댑니다. 이제 3차 시험이 남았는데 이제까지 1차와 2차는 집에서 책보고 혼자 공부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최소한 40시간의 실제 수업을 들어야 하는게 의무사항입니다. 회사 계속 다니면서 총 2 개월 잡고 공부하면 되겠는데 이제 곧 세금 신고 시즌이 돌아와서 4월 말일까지는 한참 눈코 뜰 새 없이 회사일로 바쁠테고 게다가 요즘 다른 비즈니스 준비하는 것도 있어서 도저히 그 수업을 위해 1주일 회사를 쉴 수도 없습니다. 결국 연타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원래 생각했던 6개월만에 자격증 따기 계획은 접어두고 여름에 회사 휴가 기간에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겠답니다. 예전 AICPA 합격때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엔 저도 진정한 셔터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아내는 어찌 보면 시험에 강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선다형 찍기에 강하더군요. 예전에 AICPA 시험 볼 때에도 비교적 쉽게 패스하더니 그 뒤에 자잘한 다른 것들을 포함해서 이번에 리얼터 시험에까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시험 공부를 하고 또 패스하더군요. 공부라고 해서 무슨 머리띠 매고 결사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침대에 누워서 읽다가 잔다거나 하는 식이라서 참 신통하다 싶습니다. 이런 아내가 사실은 어린 시절에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시험에서도 전기 대학 시험에서 떨어져서 자포자기한 맘으로 후기 대학의 전혀 관심없는 학과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릴 때 자신보다 공부를 잘 했다는 사람들보다 별로 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보입니다. 왜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아마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하고 그에 관련된 자격증 시험을 봐서가 아닐까요. 결국 아내도 획일적인 한국 교육 시스템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이미 고등학교때 영어 과목은 포기했다고 하지만 지금 캐나다에서 영어로만 일하는 회사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예전에 자신의 소질을 미리 발견할 길이 있었다면 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요즘 아이 교육 얘기로 게시판이 뜨끈뜨끈 달궈져 있어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무엇을 가리키는 건가요? 영어 실력, 학교 성적, 대학 입학, 대학 졸업, 자격증 시험, 입사 시험…. 이런 것들에게서 좋은 결과를 위한 교육인가요? 아니면 아이가 매사에 올바른 판단을 하고, 나중에 살아 나가면서 닥칠 수 있는 어려움에서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능의 기본을 닦아주고, 가족의 중요함과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아나갈 수 있는 인덕을 쌓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는건가요? 저는 후자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니는 나이 때에 서울 송파구에서 양평 시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사람들이 질색을 하고 말립니다. “아이가 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시골로 가면 어떻해요? 시골 산속에서 자라면서 거기 후진 시골학교에 보내려구요? 아이 교육 문제를 생각하셔야죠!!!”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시골로 가는겁니다.”
그곳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라 강원도 두메 산골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는 조그맣고 학교도 작았습니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 1리와 2리, 회현리, 국수리 일부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였고 한 학년에 한반, 한반에 10명에서 15명, 전교생은 90명 안팎, 교사들은 10명 정도. 하지만 아침마다 대형버스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태워가고 오후에 집 근처에 내려놓았고 학교에는 전교생과 교직원들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 건물 (100명만 수용하면 되니까 큰 규모는 아닙니다..)이 따로 있었으며 과학실이니 컴퓨터실도 따로 있고 각 교실마다 대형 프로젝터로 시청각 교육을 했습니다. 요즘엔 시골 학교의 시설들이 이처럼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양평은 수도권 수변지역이라는 것때문에 예산 지원이 조금 더 많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학교 앞에는 아무런 건물이 없어서 가게도 없으니 당연히 아이들이 구멍가게 앞에서 배회할 일도, 서울에서처럼 술집이니 여관이니하는 유해시설들 때문에 불만을 가질 일도 없습니다. 동네가 작으니 아이들을 다 알고 그 부모들이 누군지도 다 알고 왕따니 뭐니 하는 것도 염려할 필요가 거의 없었지요. 일년에 두 번 있는 운동회는 동네 잔치였습니다. 학생들 행사 절반, 부모 가족 행사 절반이라 저도 줄다리기, 모래주머니 쌀푸대 메고 달리기 등등 출전했습니다. 아들내미는 공기 좋고 물 맑고 유해환경 없는 곳에서 초등학교 전반기를 다녔습니다.
양평군에서 4년여 생활을 하면서 아들에게 공부 타령을 하거나 과외 공부를 시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건전한 곳에서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엉뚱하게도 이 녀석이 다른 남자 아이들이 관심갖지 않는 발레, 피겨스케이팅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서 서울과 분당으로 태우고 다녀야했던 것은 있었지만요. 남자애가 무슨 발레, 무슨 피겨 스케니팅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머리속에 온갖 가능성이 살아 숨쉬면서 그때그때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내비치면 그걸 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지원해주고자 했습니다. 아들은 원래 물 공포증이 심했는데 양평군 부설 여성회권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서 지속적으로 수영을 배우면서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이제 캐나다에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에도 훌렁 벗고 뛰어들어서 편한 마음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까칠한 성격과 민감성까지 닮은 것 같아서 더 주의깊게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했습니다. 저의 암울했던 시절은 성장기의 거의 모든 시기에 걸쳐서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가져왔던 그 내성적이고 민감한 측면은 주변의 무관심과 문제 있던 집안 환경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걸 절실하게 느끼기에 아들에게 그런 전철을 밟게하면 안 되겠다싶은 마음도 강했지요.
남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너는 공부 잘 하는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그런 속편한 소리를 한다.” 공부 잘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특별히 어느 과목을 잘 하는 것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모든 과목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면 제 아들은 공부 잘하는 축에 들기는 힘들겁니다. 타고난 몸치라서 체육 과목은 상당히 못하고,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과학 과목들에는 흥미가 없어서 억지로 따라가는 정도이고, 수학에는 별로 소질이 없습니다. 반면에 영어는 캐나다에 오자마자 바로 학년에서 최고 점수를 받을 정도이고 음악은 고등학교에서 월반할 정도, 미술은 미술 선생님이 미대 가라고 허구한날 부추깁니다. 많은 분들이 추구하는 의대나 법대 가기에는 학업 능력이 상당히 언밸런스합니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겠다면 상당한 가능성이 보입니다. 다른 한국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들 친구 가운데 한국 아이 하나는 그림을 너무 좋아하고 실력도 좋지만 집에서는 그쪽으로 나가는 것은 절대 반대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의대라는 목표를 이미 부모님들이 설정해 놓으셔서 힘들어도 수학 과학 6 개 과목을 한꺼번에 듣는 식스팩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 네 장래를 위한 것이야”라고 하겠죠.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 캐나다에 와서도 계속 공부 공부, 성적 성적, 좋은 대학 타령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긴 평등해서 좋다면서요? 그래서 이 나라에 이민 온 것 아닌가요?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도, 시청 청소차 모는 공무원도, 경찰이나 소방관도 모두 좋은 대우 받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어서 좋다고들 말하시지 않았나요? 그 평등과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칭송하면서 뒤로는 여전히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형성해 왔던 가치관은 그대로 유지하고 그걸 우리 자식들에게도 여전히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그냥 영어 못한 설움을 풀기 위해 아이들이라도 영어 잘 하게 만들려고 온건가요?
아이들 공부에 대한 제 생각은 다른 분들과 좀 다릅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 나가면 점차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다 해당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누가 아이들 학교 공부 때문에 고민한다고 해서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한다면 그건 위로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떤 과목은 잘 하고 다른 과목엔 소질이 없는 애들도 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아이들도 있구요. 그런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부에 만능이 되고 유명 대학에 진학하고 의사가 되라, 엔지니어가 되라, 변호사가 되라고 부추긴다고 그쪽으로 다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체육을 잘 해서 운동선수가 되면 좋을 아이가 있고, 애니메이터가 될 수도 있고, 군인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냥 평범한 직장에 만족할 아이들도 있습니다.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 어때서요? 가족의 중요성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인 되는 것만으로는 진정 부족한건가요?
얼마전에는 영문 소설가, 그리고 영화 쪽 일에 대해 관심을 갖던 아들내미는 요즘은 박물관 큐레이터 같은 일을 어떨까하고 관심을 갖고 이것 저것 알아보더군요. 아마 이것도 잠시 동안만일겁니다. 한참 여기 저기로 관심이 오갑니다. 아내와 저는 특별히 뭘 하라고, 뭘 해야 한다고 힌트를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올 9월에 12학년이 된다 싶으니 이 녀석의 머리 속도 많은 탐색을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제 부모가 특별히 뭘 하라고 하진 않으니 자기라도 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 하는 아르바이트가 어린이들 미술과 음악 등을 가르치는 일인데 잘 하고 있는걸 보면 학교나 유치원 선생님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극이니 노래 등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라서 그쪽도 배제할 수는 없을겁니다. 무엇이 되었든, 제가 가르친 인간의 기본적인 자격을 만족하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