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에 느꼈던 캐나다의 날짜 표기 방식에 대한 얘기다.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쇼핑을 하러 갔을때 문득 겪었던 난감함… 과연 이 물건의 유통 기한은 언제인걸까. 특히나 고기나 신선식품 같이 유통 기한이 짧고 게다가 이 물건을 사려고 하는 시점은 같은 해 4월이라면?
지금이 4월 어느날인데 여기에 표시된 월 표시 MA 가 5월 (MAY) 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아직 날짜가 남아있고 3월 (MARCH) 라면 벌써 기한이 지난 것일텐데, 설마 이런 대형 마트에서 유통 기한이 지난 것을 팔고 있을까…? 아니다, 그런 경우를 본 적 있다. 도대체 이게 무얼까. 이게 5월일까 3월일까. 직원에게 물어보기도 뭐하고, 그냥 다른 것을 골라본다. JU 이건 JUNE 6월이겠고, 그런데 JL 도 있네? 이건 JULY 겠다. 그때 발견한 날짜 표시의 MR… 아하! 이건 MAR 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MA 는 MAY 가 되는건가? 맞다!! 미국에서는 알파벳 3글자를 써서 JUN, JUL, MAY 같은 식으로 표기해서 전혀 헛갈리지 않았는데 이놈의 캐나다는 왜 이런 식으로 표기하는거냐구..
여전히 확신을 하진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검색의 생활화를 실천해 봤는데, 그제서야 이게 캐나다스러운 이유가 있는 설명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4월을 영어로 표시하면 April, 불어로는 Avril 이 되는데 미국처럼 처음 3 자리를 약자로 사용하면 APR 과 AVR 사이에서의 갈등이 시작된다. 캐나다가 분단 국가도 아닐진데 온타리오에서 만든 물건은 APR 로 표시되고 퀘벡에서 만든 것에는 AVR 로 표시되면 안되는 일. 그렇다면 동일한 첫글자는 그대로 두고, 두번째 글자는 영어와 불어 단어에서 공통적으로 포함한 L 을 쓰자. 그래서 AL 이 4월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게 정부에서 만든 공식적인 설명인지, 아니면 개인의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말이 되는 설명이다. 다른 몇가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월 표시의 영어 약자는 해결이 됐는데, 정작 해결이 쉽지 않은 다른 문제가 보였다. 미국에서는 2016년 10월 12일을 10/12/2016 로 표기하거나 October 12, 2016 또는 OCT 12, 2016 의 순서로 표기하는게 표준이다. 만약 연도를 두자리로 줄이면 10/12/16 이 되는 것이고 MDY 순의 원칙은 변하지 않기에 잘못 읽게 되진 않는다.
문제는 캐나다에서의 표기법이다. 캐나다에서는 3 가지 표기법이 모두 사용된다. 2016-10-12 으로 쓰기도 하고 10/12/2016 으로 쓰기도 하고 또는 영국식으로 YDM, 즉 일월년의 순서대로 12/10/2016 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 이미 혼란이 생긴다. 과연 10월 12일인가 아니면 12월 10일인가. 이제 나아가서 연도를 두자리 숫자로 표기하면 점입가경이다. 10/12/16 이라고 쓸 수도 있고 12/10/16 이 될 수도 있다. 연도가 2016년인지 2010년인, 10월인지 12월인지… 가장 확실한 것은 연도가 4자리 숫자로 표기되어 맨앞에 나가 있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무조건 연-월-일 순서이므로 문제가 없어지지만 오래된 습관과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곳에서는 연-월-일 방식을 주로 쓰는 것 같다. 은행 체크, 여권, 정부 문서를 보면 대개 그런 편이다. 그런데 신문, 잡지, TV 같은걸 보면 또 미국식으로 월-일-연 방식이 많이 보인다. 퀘벡이나 동부 해안 지역에서는 또 일-월-연 방식을 많이 쓴다고 한다. 대체로 그런게 많다는 것이지 다 그런건 아니다. Expiry Date 가 중요한 식품이나 의약품을 살 때는 여전히 표기 방식이 섞여서 어리둥절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2016-MA-15 또는 15-MA-2016 처럼 친절하게 연도를 4자리 모두 표기해 주고 월은 문자로 해주면 순서가 어찌됐든 상관 없는데 모든 업체나 기관들이 그렇게 자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뭔가 날짜표기가 확실하지 않으면 암호 해독하듯 추리를 하는 수 밖에 없겠다. 시간이 가면서 좀 나아지고 나중엔 한가지로 통일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