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금고에서 꺼내온 현금 매출금을 입금하려고 집 근처 TD 뱅크 지점에서 돈을 행원에게 넘기는데 컴퓨터에 올라오는 계좌 정보에서 내 이름을 본 직원이 What can I do for you today, Mr. Kim 이라고 말하면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현금 다발을 받아들었다. Kim 이라는 Last Name 이 내가 한인임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허리까지 살짝 굽히는 제스쳐를 보이면서..
백인 남자 직원이 아니고 중국계 직원도, 심지어는 한국말로 대화하면서 업무를 봤던 한인 행원들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좋은 의도인건 알지만, 약간 오버스러운 느낌이긴 하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배워서 하는 행동일텐데 그렇게 가르친 사람은 정말 뭔 정확히 알고 그렇게 가르쳐준 것일까? 이 행원에게 웃으며 넌지시 물어봤다. “방금전에 보니 두 손으로 캐시를 받네요?” 그랬더니 그 행원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Try 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이건 오버 액션이예요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냥 웃어주고 말았다.
한국의 은행들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신경 써서 볼 일이 전혀 아니었다. 한국의 은행에서는 돈이나 통장, 서류 같은 것들을 행원이 한 손으로 받으면 고객들이 불쾌하게 생각할까? 문득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거의 모든 경우에 현금이나 통장, 도장 등은 조그만 바구니에 얹어서 행원과 고객 사이에 오고갔던 것 같다. 서류들은? 그냥 손으로 주고받았지만 두손으로 정중히 주고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TD 뱅크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거다.
개인 차원에서의 배려건 아니면 회사 차원에서 각 이민자들이 온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서 고객을 대하라는 안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 가령 인디아 문화권에서는 왼손으로 무엇인가를 건네주는 행동이 엄청 무례하게 여겨진다고 들었다. 캐나다에 와서 그걸 가지고 난리를 피우진 않겠지만 서비스 제공자 측면에선 이왕이면 다홍치마이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숫자로서 4 자 사용이 적지않게 터부시되었었다. 가령 많은 엘리베이터에서는 1, 2, 3, F, 5, 6 … 식으로 버튼에 표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4 라는 숫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4 를 F 로 표기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빼버려서 1, 2, 3, 5, 6.. 처럼 이상한 층수를 가진 건물들도 있단다. 캐나다에서 이런것까지 고려하지는 않겠지만 급속히 증가하는 중화권 이민자를 고려하는 방안으로 많은 것들에 대해 배려하고 있을 것임은 틀림없다.
캐나다에 새로 와서 살기 시작한 이민자들은, 그렇다면 문화적 배려를 받기만 해야할까? 캐나다 본래의 문화에 맞춰야 할 것들이 보통 많은게 아닐 것이다. 한편, 신규 한인 이민자들의 캐나다 문화 충돌에 대해서는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배려의 미비로 연결되고 나가서는 인종차별이니 뭐니하는 불만으로 이어지기까지도 한다. 한국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여기서 왜! 왜! 안 되냐고 하면서.
얼마전 런던 북쪽의 어느 Canada Post 우체국 매장에서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엔 젊은 백인 남자, 그 앞에는 30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두 한국 여성. 그들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옷 스타일로 보아 캐나다에 이주한지 얼마 안 보였다. 그 두 사람이 자기 차례기 되어 카운터에 다가갔다. 두 여성은 얘기를 중단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고, 시선을 약속한듯이 아랫쪽으로 향했다. 한 사람이 우편물 노티스 (배달 왔다가 문에 붙이고 가는)를 카운터 위에 내려 놓았다. 여전히 아무말도 안 하고 시선을 아래로 깐 채로. 뒤에서 그걸 보고 있자니 좀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는데..
이 우체국 직원은 전에도 내가 몇번 이곳에 일보러 왔을 때에도 있었다 항상 별로 즐거워보이지 않던 인상의 50대쯤 되는 여성인데 즉시 얼굴에 반응이 나타났다. 두 한인 여성들은 그걸 눈치챈 것 같진 않고 힌글로 ‘우체국택배’라고 인쇄된 박스를 받아들고 무심히 매장을 떠났다. 다음 차례는 내 앞의 20대로 보이는 남자. 통상적인 Hi, How are you 로 시작되는 인사가 스몰톡이 오고갔고 그 직원은 “이렇게 예의있는 젠틀맨을 만나게 되면 항상 기분이 좋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분명 바로 전의 그 여성들에 대한 불만을 표로한 것이었다. 그 남자 고객은 그냥 웃고 말았지만, 난 좀 불편한 느낌이 드는걸 어쩔 수 없었다. 그 직원의 고객에 대한 뒷담화는 분명히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객의 행동 면을 볼 때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종이쪽지만 건네주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겠지만, 여기서 그런 식으로 일을 보는 것은 충분히 rude 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양쪽 다 몰라서 생긴 일이다. 직원은 뉴커머 고객에 대해, 이 한인 여성들은 캐나다 컬쳐에 대해서. 직원은 신규 이민자가 많은 이 동네에서 일하면서 그런 융통성을 배우지 못했을까 싶은 것, 그리고 이들 신규 이민자들은 새로이 살게된 동네에서 새 문화를 배우려는 의지가 충분히 있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 만약 툴툴거리는 직원에 대해 눈치를 챘다면, 그리고 자신들 뒤의 젊은 백인 남자에게는 웃으면서 대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또 그 두 한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을 느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화적 차이를 알고 있었다면 많은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된다. 우리같은 신규 이민자들 경우에, 다른 나라에 가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일단은 그 나라 언어뿐 아니라 자질구레한 문화와 관습까지 최대한 알려고 노력해야 맞을 것 같다. 한국에선 이랬는데… 이게 당연한건데… 여기선 왜 안 되냐… 등등의 변명은 이곳에 와서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을 알려는 노력과 이해심이 있으면 훨씬 알찬 이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