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에어포트 플라자의 여학생들

By | 2010-10-02

흔히들 에어포트 플라자라고 부르는 이곳은 정확히는 센트럴 에어포트 플라자 (Central Airport Plaza) 가 정식 명칭인 쇼핑몰이며 로빈슨 백화점이 한 건물 안에 붙어있어서 매층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몇가지 생필품을 구입한 뒤에 주차장 2층에 주차한 차로 갔더니 이스즈 소형 트럭이 바로 앞에 이중 주차되어 있었다. 요즘 치앙마이에서 예전보다 자동차 수가 많이 늘어나서인지 평일이래도 점심 무렵엔 거의 항상 이중 주차가 될 정도이고 이때문에 백화점 옆에 주차장 증설 공사가 진행중인 듯 했다. 트럭을 밀어서 내차가 나갈 공간을 만들려고 했는데 양손에 쇼핑한 비닐백을 들고 있어서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어서 힘을 줄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는 여학생들, 교복을 보아하니 아마 근처 여대생들인듯 한데 그들 앞에서 우스운 자세로 차를 밀기도 그렇고해서 손에 든 물건들을 차에 넣고 다시 밀기로 했다.

차문을 열고 비닐백을 넣고 돌아서니 이런, 그 여학생들이 지나치다말고 돌아와서 서로 웃고 떠들며 트럭을 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장면에 잠깐 놀랬지만, 그래도 금새 ‘그래 여긴 치앙마이니까..’라고 느끼며 나도 함께 트럭을 밀어서 차 나갈 자리를 만들고 여학생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들은 내 감사말에 웃으며  손을 모아 답을 하고 다시 떠들썩하게 백화점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차 안에서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잠시동안 이 상황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치앙마이에서는 이런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에 와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때 문득, 내가 그들 또래였을 때의 시절을 기억했다. 갑자기 기억난 영상들, 그건 언덕길을 힘겹게 끌고 올라가던 연탄배달 리어커를 내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밀어서 길 위까지 신나게 밀어올리던 장면이었다. 그때의 나와 친구들도 이 여학생들처럼 웃고 떠들면서 리어커를 밀고 있었다. 채소가 가득찬 다라를 머리에 올리려고 낑낑대던 할머니를 보고 번쩍 들어올렸던 내 모습도 보였다. 추운 겨울에 술에 취한채 도로변에 주저앉아있던 취객을 일으켜 세우던 나와 대학시절 친구의 손도 보였다. 연쇄적으로 많은 모습이 보였다. 나름 ‘착한일’을 했다고 뿌듯해 하며 상기된 볼을 느끼며 내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되로 하며 뛰어가던 내 초등학교 시절 모습까지도…

그런데 그게 모두 한참 오래전의 기억들이었다. 거의 30년전, 혹은 20여년전의 일이었다. 10년전, 5년전, 1년전의 그런 모습들이 보이질 않는다. Short-Term Memory Loss 현상은 아닐게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지, 내가 선뜻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상황에서 나섰던 일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나도 바뀌었고 예전에 그런 행동을 했던 시절의 내 나이가 되는 요즘 아이들도 다들 30년전의 그 나이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과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다르고 시절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그냥 고개를 저어보지만, 방금전에 웃고 떠들며 트럭을 몰던 그 모습들이 너무 강하게 내 의식을 두들기고 있다. 이곳 치앙마이에서도 30년, 아니 10년 후에는 한국처럼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 막을 수 없는 경제발전과 현대화의 흐름 앞에서 나중엔 이런 모습이 여기서도 사라지게 될까….? 여기선 아직 이토록 당연한 배려와 친절의 모습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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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태국에선 대학생들도 이렇게 교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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