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웃음소리

By |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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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그렇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우리 마누라는 좀 대단한 여자인 것 같다. 캐나다에 와서 2년을 그냥 다른 일 하지 않고 지내는 듯 싶더니, 작년 초에 최종적으로 영주권을 받자마자 집을 구입하고 그 집을 담보로 또 융자를 받아 렌트용 다세대 주택을 구입했다. 그리곤 바로 Fanshawe College 에서 매일 5시간씩 수업하는 속성 과정을 두달간 듣고는 3개월간 무보수로 조그마한 캐네디언 세무 신고 업체에서 일하고는 올해 초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얼마전부터는 야간 세무 코스를 매주 두번씩 듣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Realtor 시험 신청을 해서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하긴 예전에 한국에 살고 있을 때에도 알아봤다. 그때 갑자기 미국 회계사 AICPA 자격을 따겠다고 시작을 하더니 전혀 회계의 ㅎ 자도 모르는 사람이 10개월 공부하고 수업듣더니 바로 괌에 가서 시험을 보고 꼭 1년이 되는 시점에 Certificate 을 받았을 때였다. 태국에서 살 때에는 몇달 태국어 공부를 하더니 바로 태국 아줌마들이랑 수다를 떨기까지 했으니… 그뿐 아니다. 애를 낳을 때에는 첫째 아이는 힘 두 번 주고 낳았고, 둘째 아이는 한 번 만에 쑥 나와버렸다. 의사와 조무사가 애를 받을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 사람들도 참 놀라는 표정이었다. 지난 겨울에는 여자 축구리그의 한 팀에 들어가서 매주 축구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축구라고는 난생 처음 해본다면서 그냥 그렇게 해버렸다. 그리고는 여름 리그에도 출전했고, 이제 또 겨울이 되면서 다시 겨울 리그에도 나간다고 한다. 지난 달에 한국의 아파트 매매 계약이 되면서 조금이나마 목돈이 들어오게 되면서 마누라는 이 남편에게 무슨 비즈니스를 시킬까하고 눈을 번뜩이고 있다. 난 계속 이대로 전업주부 모드로 나가면서 놀고픈데 이 생활도 오래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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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선수 화이팅!)

결혼을 결정할 때에도 마누라가 먼저 ‘결혼’이라는 말을 꺼냈다. 아직 대학 4학년이던 만 22살에, 그 당시 금성사 연구소에 다니던 29 살짜리 아저씨에게 그랬다. 그 뒤에 난 미국으로 파견을 떠났고 아내는 학교 다니랴 결혼 준비하려 혼자 바빴다. 내가 없어도 혼인 신고도 아예 미리 자기가 알아서 해버리고 예식장은 자기가 내 회사로 찾아가서 직접 그당시 계열사 직원들에게 염가에 대관해 줬던 반도유스 호스텔에 예약을 했고 예단이니 예복이니 다 혼자 준비를 마쳤다. 6개월 뒤에 한국에 잠깐 들른 나는 마누라의 졸업식에 참석하고 며칠 뒤에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 바로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아내의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용”인데 여자 이름답지 않게 한자로 날랠 용(勇) 자라서 이렇게 행동이 과감한건가…

이 사람의 생일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어떻게 축하해야 하고, 어떤 선물을 줘야 할까. 난 연애 시절에도 꽃 한번 사 준적도 없었고 결혼 후에도 그랬다. 아내는 맘에 있는 소리인지 아닌지 몰라도 “금방 시들어 버릴 걸 뭘 돈 주고 사고 그래”라며 호응했지만, 나는 안다. 내가 꽃을 사주었다면 “참 예쁘다”라고 대답할 사람인 것을… 이제 결혼 20주년이 몇달 안 남았는데 그 동안 생일 선물을 준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둘이서만, 또는 네식구가 다 함께 나가서 외식을 하기도 했고 또 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그냥 전화로 “내 평생 가장 큰 행운은 당신을 만난 일이야”라던가 “복권 1등을 맞은 것보다 더 운좋은 일이 당신과 결혼한 사실이야”라는 식으로 말로만 때우곤 했다. 집을 산 해에는 “이 집이 당신 생일 선물이야”라고 했고 차를 산 해에는 또 그렇게 둘러대왔다. 이런 나에게 마누라는 항상 웃음으로 응답해 줬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가야 하나..

내가 컴퓨터 앞에서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마누라가 뭐하느냐고 묻는다. 대충 얼버무릴까하다가 사실대로 얘기했다. “당신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쓰고 있다고..” 마누라가 허허 웃었다. “이번에도 또 글과 말로 내 생일 선물을 무마하려고 하는군. 다 알아.” 하긴 지난번에도 난 마누라 찬양문을 써서 아내에게 “용비어천가”라고 하며 바친 적이 있었다. 이름에 “용”자가 들어가니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싶었다. 아무튼 그때도 아내는 웃어줬다. 지금도 웃는다. 무슨 선물이니 축하니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남편에 대해 그냥 웃어준다. 아내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나도 부담감이 팍 덜어진다. 이번에도 어쩌면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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