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스케이팅

By | 2012-10-28

내가 스케이트를 처음 타고 얼음을 지친 것은 8살 때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는 워낙 스케이트가 대중적인 겨울 스포츠가 되다보니 개천마다 물을 막아 만든 자그마한 스케이트장이 동네마다 있었다. 그건 좀 큰 도시인 대전의 경우였고 충청북도 제천으로 이사갔을 때에는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던지 아니면 논바닥을 이용하곤 했다. 내가 다리 아프다고, 자꾸 넘어져서 타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는 동전 한닢을 주시면서 저기 건너편에 있는 장사치에게 스케이트를 타고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오라고 하면서 스케이트를 연습시켰다고 회상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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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스케이팅의 인기가 시들해지더니 아예 보기조차 힘들어 진 것 같다. 점점 도시화가 되어 가면서 스케이트를 탈만한 빈 공간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TV니 컴퓨터니 게임기니 뭐니하는 것들로 아이들은 몰려갔나보다. 게다가 스키라는, 더 멋있어보이고 더 스릴있어 보이고, 더 돈이 많이 드는 곳으로의 종목 이전이 이루어진 이유도 있겠다. 한국에 살면서 스케이트 타는 것을 본 것은 롯데월드 아이스링크나 몇몇 실내 스케이팅장에서뿐이었다. 청소년들의 일탈 기회를 제공했던 실내 롤러장도 비슷한 맥락으로 없어졌을 것이다. 하긴 나도 중학교 졸업한 이후엔 전혀 스케이트를 신어보지 않다가 아들내미가 스케이트를 배우면서 함께 롯데월드에서 잠깐 타본 것이 현재까지 유일한 경우였다. 아주 오랫만인데도 탈만 했다. 마치 오랫만에 타보는 스키도 그 기술을 잊지 않았던 것 처럼 말이다.

아들내미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여자아이들 틈에서 발래 학원을 다니더니, 8살 즈음에는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고 싶어해서 또 다시 여자아이들 틈에서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그 당시는 경기도 양평 산속에 살던 시절인데 레슨을 위해 분당 올림픽 스포츠 센터까지 매번 아들을 태우고 다녀야 했다. 좀 힘들긴 했지만 워낙 스케이팅을 좋아하고 계속 느는 실력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다 태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아들은 지금 이때까지 스케이트를 다시 신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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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지금, 8살이 된 둘째 아이는 작년부터 매주 커뮤니티 센터에 가서 스케이트를 배우고 있다. 겨울에만 두 세달씩 매주 한번 하는 레슨이기도 하지만 운동신경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좀처럼 늘진 않는다. 그럭저럭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살살 얼음을 지치고 다니는 정도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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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마음으로는 작은 아이가 쥬니어 하키 클럽 팀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잘 타게 되면 좋겠는데 싶긴 하다. 물론 체격적으로는 충분히 선수감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전혀 그럴 운동신경과 열의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냥 꿈 깨야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스케이팅을 하면서 적지 않은 운동이 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이번 겨울에, 아니면 다음 겨울에라도 아니래도, 내년이래도 이 두 아이와 함게 셋이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나도 큰 아이도 정말 오랫만에 스케이트를 타는게 될 것이다. 아내도 함께라면 더 좋겠지만, 그건 너무 심한 주문이 될 것임이 분명하므로 그냥 관람만 하라고 해야겠다. 아이들이 더 커서 떠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있을 때 잘해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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