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장학금

같은 런던 하늘 아래에서 다른 곳으로 나가 살고 있은지 꽤 된 대학생 아들이 주말동안 집에 와 있었는데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가 있다가 나오면서 그냥 한마디 던진다.

“장학금으로 만7천불 준다고 이메일 왔어요.”

장학금 받는다고? 그건 대학에 진학한 후로 매년 서너번씩 들어오던 얘기인데… 그런데 이제까진 몇백불 내지는 많아야 1~2천불이었는데 설마 1만 7천불이라고? 그렇게 많은 장학금이 어디 있나.  천칠백불을 잘못 본거겠지.

그런데 아들은 그 액수가 맞다고 한다. 혹시나하고 이번에도 학교에서 주는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이번 것은 연방정부 장학금이란다. 대학원 진학해야 실제로 받는 것이고… 학교나 주 정부가 아니고 페더럴 거번먼트라면.. 만불 단위는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게 맞는단다. 어차피 이번에 웨스턴 학부 졸업하면 토론토 대학의 석사 과정을 가겠다고 계획을 세운 상태여서 그 조건으로 받는게다. 사실 또 앞날이 어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녀석의 학비 걱정은 또 한번 덜어서 좋은 일이긴 하다. 돈 안들이고 공부시키려는 것도 캐나다까지 이민 온 이유 중의 하나인데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줘서 좋기도 하고.

센트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영어 과목과 사회 과목, 특히 에세이 쓰는 것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잘한다 싶은 이 아이는 공부는 잘 했지만 보통의 한국 아이 (혹은 아시아 계) 치고는 좀 다른 쪽이었다. 일반적인 아시아 계 (한, 중, 인도) 아이들은 수학과 과학 등을 잘하는데 아들은 수학 과학은 그저 그런 점수를 받는 수준이었는데 어문학, 특히 영어와 관련된 과목들은 항상 최고 점수를 받아왔던 것이다. 보통이 99점, 가끔은 보너스 점수 추가로 101 점도 받아왔으니 꽤 특이한 편이 아닌가. 런던 센트럴 고등학교 시절에는 숙제로 에세이를 써 가면 선생님들이 이 녀석 에세이를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 앞에서 읽어주라고까지 했다니까 할말 다했지 싶었다. 그러나.. 수학, 과학 과목은 잘하면 80점, 혹은 70점대 점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들과 얘기를 해 보면 정말 수학적 두뇌는 아닌게 맞았다. 도형을 머릿속에서 이리 저리 돌리는 식의 사고를 잘 못했다. 그러다보니 과학과 수학 과목은 최소한으로 듣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얘는 자신의 성적표에 80점대 점수가 있는걸 보기 정말 싫어했는데 70점대까지 내려가는 것에는 치를 떨어했다. 그래서 수학, 과학은 일찌감치 졸업에 필요한 만큼만 들었다. 완벽한 문과 체질.

한국을 떠나기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했더니 역시나 음악, 미술, 피겨스케이팅, 댄스, 발레 같은 것을 골라 배우더니 그 기질은 여전한 것 같다. 대학교에서 처음엔 한국의 신방과 비스므리한 미디어와 영문학을 전공으로 시작했는데 몇가지 변화를 가지더니 지금은 여성학 학위로 학부 졸업을 하게 된다. 남자가 여성학을? 자신의 선택일뿐. 대학원 과정은 또 뭘 듣게 될런지 모르는데 나와 아내는 이왕이면 변호사 자격 하나 따는게 어떠냐고 은근히 권유하지만 모든건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 녀석도 대학원에서 뭘 할지의 결정이 중요한줄 아는지 1년동안 학교를 뗘나서 사회경험 겸 저축을 위해 일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장학금 나오는 것은 1년 연기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문제는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다 싶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현실 세계에는 만만치 않은 괴리가 있는데 아들은 그런 것을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살던 시절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도 있었는데 대략 그런 느낌을 주는 아들래미. 공부가 너무 쉽고 재밌고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아들래미. 이번 학기가 끝나면 곧바로 공부가 아닌 현실 세계에 1년간 몸을 담그게 된다. 많은걸 배우고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 이맘때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새로운 선택을 하게될런지 궁금해진다.

(*아래 사진은 아들이 고등학교 10학년이었던 2012년에 첫 직장에 첫 출근하던 모습. 그당시 적은 블로그 내용은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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